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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Jun 22. 2018

책이라면 무작정 이끌리는 당신에게

2018년 서울 국제도서전 방문기


다시 한번, 서울 국제도서전



나는 여러 출판사와 책방을 팔로우하며 매일 소식을 듣고 있다. 얼마 전부터 다들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더니 한 목소리로 '서울 국제도서전'에 놀러 오라고 말했다. 작년에 갔던 2017년 서울 국제도서전을 떠올려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과 비슷해 보이는 부스 모습 등으로 많이 실망했었다. 그때 기억에 남았던 것은 '문학 자판기'라는 랜덤으로 긴 글과 짧은 글이 프린트되어 나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서울 국제도서전에 갈지 말지 계속 고민했다. 한 시간을 넘게 그곳에 가서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어떻게 진행할지 대충 머리에 그려짐에도 내가 가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래도 궁금했다. 저렇게 열심히 준비하는데 이번에는 또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책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나는 책과 관련되면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사람인 거다. 그리고 마침 평일에 시간이 있으니 이번에는 인파에 치이지 않고 온전히 그것들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찾아간 코엑스에서 서울 국제도서전의 현장 티켓을 받고 들어갔다. 민음사, 문학동네 등 익숙한 출판사들의 큼직큼직한 공간들이 눈에 먼저 띄었다. 역시 익숙한 것은 무시하기 힘들다. 그 사이사이로 크고 작은 출판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들 책만을 팔고 있지 않았다. 책과 관련된 굿즈를 준비하고, 나름 콘셉트를 가진 곳도 있었다. 한쪽 벽면을 활용해 색다른 인상을 주기도 했고, 참여형으로 사람들을 이끌며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도 제공했다. 그렇게 구경하다 보면 더 안쪽으로 또 다른 큰 공간이 나온다. 이곳은 더 여유롭게 구성되고 쉴 곳도 조성되어서 훨씬 편한 느낌이었다. 작년에는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이 꾸며졌다면, 이번에는 '잡지의 시대'라는 기획으로 다양한 매거진들이 자리했다. 개인적으로 종이로 된 매거진을 즐겨 읽기에 매우 반가웠다. 민음사의 문학잡지 Littor, joh의 브랜드 매거진인 B magazine, 호주에서 시작된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womankind, 디자인이음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bear, 즐겨 읽는 AROUND 매거진 등을 모두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2-3시간을 구경하고 살펴보며 내 기억 속에 남은 곳이 어딘가 떠올려보면, 딱 2곳이 있었다. 한 사람에게 정확히 인지되고 그 후에도 생각이 나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브랜딩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해준 브랜딩이 잘된 2곳에 대해 기록해보려고 한다.



책 산책하기 좋은 '마음산책'



첫 번째로 출판사 '마음산책'의 공간이 기억에 남는다. 대규모 콘퍼런스나 세미나 아니면 플리마켓을 가보면 알겠지만, 처음에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돌아서면 까먹게 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각인이 아니면 나중에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브랜드들을 한꺼번에 보다 보면 제약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대부분이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모습이다.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역시 책과 사람만 바뀔 뿐 책이 진열되고 팸플릿을 나눠준 것이 비슷했다.



그러나 다른 모습을 보여준 곳이 있었으니 '마음산책'이었다. 내 시선을 잡은 것은 책보다는 푸릇푸릇함이었다. 바닥, 테이블, 천장 등에 책과 함께 다양한 식물들이 꾸며졌다. 이는 'slow&steady'(슬로앤 스테디)의 노력이 컸다고 느껴졌다. 해당 부스는 마음산책과 슬로앤 스테디의 콜라보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슬로앤 스테디는 망원동 어쩌다 가게에 위치한 작은 브랜드이다. 식물과 그와 관련된 화분, 가구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아마도 마음산책이 해당 부스를 어떻게 고민할까 하다가 이쪽에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슬로앤 스테디와 비슷한 브랜드들도 많았을 텐데, 이렇게 꾸민 공간을 보면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산책이라는 이름과 어울리게 책을 산책하는 곳에 식물이 있으니 그렇게 조화로울 수 없었다.



책과 크고 작은 식물, 짙은 색의 원목가구 그리고 화룡점정은 '음악'이었다. 책과 식물 사이에 작은 오디오가 있었는데 그 공간과 어우리는 잔잔하지만 맑은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칸막이를 칠 수 없는 이 곳에서 음악은 보이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가끔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 안에서나 지루하게 막힌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듣고 있으면 왠지 나만의 시공간이 생긴 기분이 든다. 지루했던 시간도 음악을 들으면 다르게 느껴진다. 무시하기 쉬운 청각의 중요성을 마음산책의 부스에서 다시 한번 느꼈다.



공간과 어울리는 그 모든 것들이 다른 부스와는 색다르게 느껴졌고 오래도록 기억이 되었다. 많은 책이 있지 않았지만, 자꾸 그 공간을 맴돌았다. 앉을자리가 있었다면 계속 머물고 싶었다. 내가 좋다고 느낀 것은 타인도 좋게 느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주변 부스와 다르게 마음산책에는 사람들이 몰렸고 더 오래 머물렀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모습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고 싶어 했다. 좋은 것은 자꾸 찍고 싶다. 나중에도 기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








오직 나만을 위한 '읽는 약국'



두 번째는 온전히 개인에게 집중한 사적인 서점의 읽는 약국이다. 사적인 서점은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홍대 근처의 작은 책방이다. 이곳의 운영방식은 지극히 개인화에 맞춰져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전체적인 예약 가능한 시간들이 열리고 미리 예약을 받는다. 예약된 날짜와 시간에 사적인 공간은 오직 그 사람만을 위해 열려있고, 그 사람과만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맞는 책을 5권 정도 골라서 이후 추천해준다. 대화하는 동안 나에게 집중하고 지금 나의 고민을 말하게 되는 점에서는 심리상담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런 사적인 서점이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읽는 약국'이라는 네이밍과 콘셉트로 나름 화제를 몰고 있었다. 약국이 떠오르는 부스의 모습과 약봉투처럼 책 커버를 씌웠다. 그 책 커버에는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사람에 대한 문구를 적어놓았다. 얼핏 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인상이었다. 가까이 가보면 어떤 책이라도 사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한쪽에서는 가려진 책을 살펴보고 구매할 수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10분 동안 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33권의 책 중에서 추천을 해준다.


사적인 서점의 인기로 매번 예약에 실패하곤 했기에 나는 잠시 기다려서 1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지금 상황과 이전과 달라진 모습 그리고 지금은 괜찮다는 말을 건넸다. 나의 생각과 비슷한 책을 추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두 눈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잔잔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여러 책 중에 2권의 책을 추천해주었다. 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며 자신이 왜 이 책을 추천하게 되었는지, 인상 깊은 구절까지 줄줄 설명해주었다.



많은 책 중에 어울리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놀라웠고, 안정적이면서 숙련된 모습에 신뢰감이 들기도 했다. 이 사람이 추천해준 이 책이라면 나도 좋아할 거 같고, 내 일상의 힘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좋았던 것은 1권의 책만 추천해주는 것이 아니라 2권의 책을 추천해주는 것이다. 3권도 아닌 2권의 추천은 효과적이다. 내 선택권을 보장해주면서도 결정이 너무 힘들지도 않았다. 추천받은 것 중에서 또 내가 선택한 책이라 애착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과정으로 선택한 책이라면 그 책이 무엇이든 만족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었다. 역시, 지극히 개인화된 서비스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왜 좋은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은 것


왜 좋은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좋은 곳은 모두가 느낀다고도 생각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딱히 말할 수 없지만, 싫은 곳이 있고 기억에서 잊히는 곳이 있다. 좋은 경험을 했다고 느낀 곳은 모두 브랜딩이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마음산책'과 '읽는 약국'은 브랜딩이 잘 되었다고 느껴진 곳이었다.


책을 만드는 사람, 책을 판매하는 사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서울 국제도서전'이 힘이 될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더욱 좋은 경험을 제공하면서 발전하길 바라며 국제도서전을 매년 방문하며 기분 좋은 변화를 느끼고 싶다. 이번 주말까지 2018년 서울 국제도서전이 진행되니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둘러보면 자신만의 경험을 느끼면 좋을 거 같다. 그럼 다들 좋은 주말을 보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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