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산울림'의 보컬인 김창완 아저씨의 에세이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세상에 잡초는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지요.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 잡초라 할 일도 아니네요. 용기를 갖자고요.
이 대목에서 문득 '아,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구나.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구나.' 깨달았다. 산할아버지 특유의 투박한 듯 정감 가는 어투로 "굳이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어, 너는 너대로 괜찮은 사람이야." 하고 위로해 주는 듯했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을 때는 뜻대로 안 되거나 손해 보기 싫은 마음이 들켰을 때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싶어 종종 혼란스러웠다. 좋은 사람이고 싶은데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며 자책했다.
싫은 사람을 억지로 좋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연습이 필요한데 한번 싫어진 건 웬만해선 좋아지기가 어렵다. 구겨진 종이가 새것처럼 다시 빳빳해질 수 없듯이 상대방에게 받은 상처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가 좋아지지 않는다고 내가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닌데, 마음이 불편하니 불덩이를 안고 사는 것처럼 괴로웠다.
돌아보면 나는 '감정'이란 것을 모르고 살았다. 부모의 말이 내게 상처를 주는 줄도 몰랐다. 그들의 필터 없이 쏟아내는 거친 말들은 외부의 자극을 습자지처럼 흡수하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직격탄을 던졌다. 혼자서 생존할 수 없는 그 시절의 나는 부모가 내뱉는 폭력적인 말속에 담긴 심정을 이해하려 애썼다.
"연년생은 키우기 힘들다더라. 그래서 너 가졌을 때 지우려고 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지우지 말라고 해서 낳은 거야. 그러니 할아버지한테 감사하게 생각해라. 아님 너 이 세상에 없었어."
'그래, 얼마나 힘드셨겠어. 나는 해보지 않았지만, 아이 키우는 건 힘들다고 들었어. 그러니 부모님 이해해. 키워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해야 돼.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어.' 내 존재를 거부당했다는 느낌,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부정적 감정을 애써 외면했다. 그들의 사랑이 필요한 어린아이는 작디작은 세계에서 쭈그린 채로 언제나 혼자였다.
새 가정을 이뤄 품에 안은 아이가 34개월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면 안다. 내 새끼한테는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고 더 잘해주지 못해서 속상한 마음을. 잘못을 혼내놓고 밤에 잠든 얼굴 보면 아까 했던 말이 아리고, 더 많이 웃어주지 못하고 안아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부모가 되기 전엔 몰랐던 부모의 마음을 부모가 되면 알 수 있다. 부모라고 해서 아이에게 상처 줄 권리는 없다.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사과받을 수 없는 과거의 말들이 이제야 상처로 남아있다는 걸 깨닫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내 '감정'을 직면하기로 용기를 낸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내 사정을 조금 안다고 해서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라며 조언이랍시고 돈 한 푼 안 들이고 쉽게 하는 말은 상처가 될 때가 많다. 그들이 때로 던지는 배려와 존중이 없는 거친 말을 굳이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사랑하자고 내가 정의한 '좋은 사람'의 의미는, 나를 그렇게 대해주는 좋은 사람 앞에서만 가능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나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았을까. 남의 감정은 제대로 살피지 못하면서 불편한 내 감정은 어떻게든 표현하려 했던 어리석음을 반성하며 뒤늦게나마 미소와 친절을 공부한다. 어릴 적 상상한 멋있는 어른과는 거리가 멀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에 이른 지금도 거슬리는 게 많고 예민하다. 왜 더 둥글어지지 못할까,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가 자책하던 내게 굳이 그러지 않다도 된다고 토닥인다.
노력해도 싫은 감정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부정적인 감정에 이름을 붙여 마음방에 그대로 둔다. 좋아하는 것으로 싫어함의 감정에서 생기는 빈터를 메운다.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진 않지만,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온 인생을 위안하며 작고 소소한 행복으로 일상을 편안한 감정으로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