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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나는 그다지 '열심히' 다이어트에 임하고 있진 않다. 나처럼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딱히 운동 같은 운동도 하지 않는 주제에 매일 아침마다 몸무게 정도나 겨우 재는 정도로 다이어트 운운하는 말을 한다면 사방에서 눈총을 쏘아댈 사람이 모르긴 해도 몇 트럭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내 다이어트가 건성이라고는 해도, 일단 그런 것을 한다고 마음먹은 이상 뭔가를 먹기 전에 이게 소위 살 잘 찌는 음식인가 아닌가 정도는 한번 검색해 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개의 음식은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아 살찌겠다 혹은 별로 안 찌겠다 하는 정도의 첫인상이 있고 그 첫인상이 대개는 맞다.
그런 '첫인상'과 사뭇 다른 검색 결과값을 주는 음식 중 하나가 파스타다. 파스타는 의외로 꽤 많은 사람이 추천하는 '다이어트식'이다. 아니 어째서?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언제나 이런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나 마구 할 수 있는 말로, 내가 보기에는 라면이나 파스타나 거기서 거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기름기는 별로 없는 라면에 비해서 올리브유에 뭐라도 볶아야 하는 파스타 쪽이 훨씬 열량이 높게 느껴지는데도 많은 사람이 저녁 무렵 너무 출출해서 견딜 수가 없으면 라면을 끓여 먹는 것보다 차라리 올리브유에 마늘만 볶아서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 편이 낫다는 답을 해 준다. 거 참, 신기한 일이라고 내내 생각했었다.
이 오래된 의문이 풀린 것은 어제 아침 쯤의 일이었다. 카페 게시판에서 이 브런치에도 몇 번이나 언급한 적이 있는 '파스타 1인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였다. '파스타라는 건 도대체 왜 만들어놓고 보면 태산같이 불어나 있는가'하는 고전적인 주제를 보고 뭐라도 한 마디 얹어보려고 웃으면서 글을 클릭해 들어갔다. 그러나 그 글에 달려있는 댓글을 읽다가 나는 내가 하려고 들어온 말(아마도 원래 그렇다 운운하는 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파스타면 봉지 뒤에 보면 1인분 정량이 100그램이라고 나와 있는데요, 아닙니다. 소스 조리법에 보면 1인분 정량이 대개 70 내지 80 그램이에요. 레스토랑 같은 데서도 대충 75그램 정도를 1인분으로 잡습니다. 그러니 100 그램만 잡아도 벌서 1.5 인분 가까이가 나오는 셈이죠. 그 밑에 달린 댓글 하나를 읽어보고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그래서 600그램 정도 든 파스타 소스를 사면 대여섯 번 정도는 해 먹을 수 있다는데 저는 매번 두세 번 쓰면 한 병을 다 먹는 거로군요. 이건 정말로 그렇다. 600그램 정도가 든 파스타 소스 한 병을 사면 파스타 한 번에 리조또 두 번 정도를 해 먹으면 한 병을 아주 알차게 쓸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헉 소리가 나온 댓글은 그 밑에 있었다. 어쩐지, 이러니까 파스타가 다이어트식이라고 하는 건가 봐요. 1인분만 먹으면 살 안 찌겠지. 근데 파스타 1인분 그거 누구 코에 붙이는데요.
그랬다. 문제는 '양'이었다. 아무리 칼로리가 낮아도 그 낮은 칼로리를 '많이' 먹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방송에 나오는 어떤 연예인이 어머니에게 나는 왜 풀만 먹는데도 살이 안 빠질까를 푸념하니 어머니께서 '코끼리도 풀만 먹는다'고 면박을 주더라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사실이었던 것이다. 파스타는 열량도 낮고, 사용되는 재료들도 대부분이 몸에 좋은 것들이기에 다이어트식이 맞긴 하다. 단, 1인분 정량을 먹을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나처럼 '만들어놓고 보니 팬 하나 가득'이고 그걸 같이 먹을 사람도 없어서 혼자 다 먹어야 하는 사람의 경우엔 해당사항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제 부로 파스타는 소위 '살 안 찌는 음식' 리스트에서 당당하게 빠졌다. 그리고 그 기념으로, 냉장고 속에 3분의 1병 정도 남아있던 로제 소스를 몽땅 때려 넣고 역시나 2.5인분쯤은 될 것 같은 파스타를 만들어서 맛나게 먹어치웠다. 하기야 먹어도 살 안 찌는 음식이라니. 물만 넣어도 가는 자동차라든가 잠 안 자고 살 수 있는 사람 수준의 있을 수 없는 개념인 게 분명하다고 적당히 그렇게 생각해 버리기로 한다. 파스타도 살찐다. 안 찌는 만큼만 먹을 수 있으면 괜찮겠지만, 나는 아마 어지간해서는 그러지 못할 것 같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