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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러 가지로 뒷손 안 가고 깔끔한 사람이었다. 일 하면서 만들게 되는 각종 서류나 온갖 작업물 파일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 봐도 프로젝트 명 뒤에 날짜를 붙이고 같은 날 두 번 이상 수정을 하게 되면 시간까지를 꼼꼼하게 기입했다. 그래서 그는 어지간해서는 작업이 덜 된 파일을 실수로 어딘가에 보낸다든가 하는 일이 없었다.
물론 이건 그 같은 사람이나 그렇고, 나만 해도 비슷비슷한 이름의 파일을 수십 개나 늘어놓고 이게 최종이었는지 저게 최종이었는지를 몰라 기어이 파일의 수정 일시까지 대조해 보는 뻘 짓을 한참 하기도 한다. 이젠 정말로 다 끝났고 다시는 손댈 일 없을 줄 알고 야심 차게 '최종'이라고 이름을 붙인 파일에 두 번 세 번 수정할 일이 생겨서 최종의 최종의 최종의 최종 하는 식으로 파일 이름이 옛날 코미디에 나오는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 하는 식으로 길어져 본 것은 그거 아마 나만 겪어본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제 겨울 다 갔고 4월부터 11월까지 여름이래더라 하는 글을 이미 몇 번이나 쓴 거 같다. 그리고 그런 글을 써놓고 나면 영화가 다 끝나고 엔딩 크레딧까지 다 올라간 후의 쿠키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연쇄살인마 모양 귀신같이 날씨가 추워진다. 이번 주말에 비 소식이 있다기에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예보된 것이 비도 아니고 눈이라기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지금 3월도 아니고 4월 아니던지? 그리고 실제로 어젯밤에 많은 곳에서 벚꽃이 핀 위에 눈이 내리는 진풍경이 관측된 모양이다. 오늘 나가실 일 있으면 롱 패딩은 무리라도 경량 패딩 정도는 입고 나가세요 날씨가 미쳤네요 하는 글들도 여기저기 올라와 있다. 말하자면 올해의 마지막 추위가 최종의 최종의 최종의 최종 어쩌고 하는 이름으로 자꾸만 새끼를 치고 있는 그런 기분이랄까. 그래서 다른 겨울 이불은 3월 말에 나름 큰 맘을 먹고 싹싹 다 싸 넣어 놓고선 무릎담요 하나만은 못내 미적거리고 못 치우고 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 주말에는 그 미적거림이 쓸모가 있어서 해가 진 이후 괜히 서늘한 시간에 아주 잘 써먹었다.
이번 주 수요일을 지나면서는 기온이 숫제 20도 넘게 올라가던데 이젠 정말로 이런 돌발성 추위가 끝난 것일까. 참고로 아래에 첨부한 이미지 제일 아래 파일의 이름은 한글로 전환하면 'ㅅㅂ'이다. 욕을 풀로 쓸 수 없어서 쓴 그 초성이 맞다.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끝났는지 저 파일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저 폴더의 주인이신 디자이너분에게 삼가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린다. 사는 게 다 그렇더라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