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
나는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다. 똑똑하지도 영리하지도 못한 데다가 굼뜨기까지 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짓 중의 하나가 주식투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위 '삼전 몇 층'이 전 국민이 다 알아듣는 말이 된 요즘도 나는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주식이라고는 지인의 친구 초대 이벤트 때문에 하나 개설해 본 주식 계좌에서 랜덤으로 받은 코카콜라 n분의 1주(그러니까 제대로 된 한 주도 아니고, 소수점 거래인지 뭔지 하는 나로서는 당체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과정을 거쳐서 약간의 부스러기 정도나 받게 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가 전부다.
환율이 사방에서 비명을 질러대는 것과 얼추 비슷하게 미국에서 대대적인 관세 전쟁이 터졌다. 딱히 관심을 두고 읽어보진 않지만 145퍼센트니 뭐니 하는 저게 말인지 시비인지 분간도 안 되는 헤드라인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오르내리고, 그에 따라 미국 주식이 얼마가 떨어졌다느니 하는 비명이 주변에서도 꽤나 나오고 있다. 일본 전체가 버블 경제가 무너지면서 날린 돈보다 더 큰돈이 이 관세 전쟁이 시작된 며칠 사이에 증발했다는데 그게 뭐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저 동네도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그 대가 아주 톡톡이 치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이상한 것은, 미국 증시가 그렇게 박살이 났다는데도 나의 작고 소중한 코카콜라 부스러기는 한 번도 파란 화살표를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업삼아 주식을 하는 '트레이더'가 아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주식 계좌만 들여다보고 있진 않으며, 그러니 그 사이에 등락이 있었다 하더라도 내가 모르고 지나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픈 뱅킹에만 접속해도 보이는 이 주식계좌의 상태는 언제나 빨간불 상태여서 나는 이게 내심 신기했다. 전체 장이 얼마가 떨어지든 이런 부스러기에는 영향을 못 미치는 건가. 딱히 그럴 것 같진 않은데.
나에게 초대 링크를 보내 이 주식계좌를 개설하게 만든 지인에게 지나는 말로 이 이야기를 했다. 애플 시가총액이 며칠 사이에 900조 넘게 증발했다는데 이상하게 코카콜라는 한 번도 하락세인 적이 없었다고. 그 말을 들은 지인은 언니 코카콜라는 트럼프 테마주잖아 하고 깔깔 웃었다. 트럼프는 코카콜라를 좋아하는 걸로 유명하며, 그래서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 소위 '코크 버튼'도 있었던 것으로도 유명하긴 하다. 말인즉슨 그럴싸해서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도 덩달아 깔깔 웃었다.
슬쩍 찾아보니 코카콜라 주식은 한 주에 70달러 정도, 요즘 환율로는 1주에 100만 원도 넘는 '황제주'인 모양이다. 거 참, 이럴 줄 알았으면 부스러기에 살 붙이는 기분으로 한 주만이라도 온전한 걸로 사둘 걸 그랬나. 가끔 지인들끼리 재테크 이야기를 할 때면 잘 모르는 주제라 구석에 찌그러져 있곤 했는데 이젠 괜히 한 마디 끼어들어볼까도 싶다. 이거 왜들 이래 나 트럼프 테마주도 있는 여자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