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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10년 무렵까지 서울에서 살았었다. 그러다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서울의 집값을 견디다 못해 쫓겨난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금 사는 이곳을 우리는 꽤 좋아했었다. 그래서 이곳에 산 지 몇 년 만에, 우리는 일 때문에 가끔 서울에 다녀온 날이면 도대체 저런 복잡하고 기 빨리는 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나는 제법 오랜만에, 어제 일 때문에 서울에 가게 되었다.
길은 매우 간단했다. 집 근처로 오는 광역버스를 타면 거의 끝에서 끝까지였다. 타는 곳이 종점이어서 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냥 차를 타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든 음악을 듣든 책을 읽든 내 할 일을 하고 있으면 버스가 참 편리하게도 나를 목적지에서 고적 수백 미터 떨어진 정류장에 안전하게 내려줄 터였고 그러면 거기서 큰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됐다. 매주 금요일마다 백중 기도를 올리는 절에 가는 것보다 오히려 신경 쓸 일이 적었다. 뭐 그 정도의 기분이었다.
문제는 버스가 서울로 진입한 후부터 시작되었다. 차창에 물기가 서리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좀 오다 말겠지 생각한 비는 점점 기승스러워졌고 내가 버스에서 내릴 무렵에는 거의 스콜 비슷한 폭우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약속 장소까지의 길이 멀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수백 미터를 걸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을 만큼 비는 미친 듯이 쏟아졌다. 결국 나는 수백 미터는커녕 수십 미터쯤 걷다가, 근처의 지하철 역 입구로 잠깐 몸을 피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듯한 사람 서넛이 같이 지하철 입구를 서성거리며 비가 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빗발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고, 언제까지나 거기 있을 수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스콜이 장대비 정도로 잠깐 기세가 수그러든 틈을 타 다시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잠깐 잦아들었던 비는 내가 블록 하나도 채 다 지나기 전에 다시 퍼붓기 시작했다. 바지는 무릎 아래로 다 젖었고 신발 속으로는 물이 들어가 질퍽거렸다. 도저히 이 비를 뚫고 어딘지 위치도 정확하지 않은 곳을 찾아다닐 자신이 없어 다시 근처 큰 건물의 입구 처마 밑으로 피했다. 나는 거기서 또 한참이나 차양을 타고 고인 빗물이 골을 지어 흘러내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있었더라면 나는 편했을 것이다. 그는 아마 약속 장소의 지하주차장까지 차를 몰고 들어가 나를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상태로 내려주었을 것이며, 내가 미팅을 하는 동안 차 안에서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주차할 장소가 마땅치 않은 곳에 가야 할 때면 내가 일 다 끝났다고 전화를 하기 전까지 근처를 몇 바퀴 도는 것도 감수했었다. 그의 곁에 살았던 20여 년 간 나는 그런 식으로 참 편하게 살았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떠났고, 내게는 소나기가 퍼붓는 날은 이런 식으로, 신발과 옷을 버려가며 약속 장소까지 걸어가야 하는 일상이 남겨졌다.
이 글을 쓰면서 바라보는 그의 사진은 조금 시무룩한 표정이다. 어제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봤던 어딘가 조금 화가 난 듯하던 표정과는 확연히 다르다. 데려다주지 못해서, 어제 그 비를 맞고 고생한 것이 못내 안쓰러운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나갔다 올 일이 있고, 오늘은 비 맞지 말고 갔다 오라는 듯 하늘이 청명하게 개었다.
아직 거기 간 짬밥이 얼마 되지 않아서, 조금 떨어진 서울 날씨까지는 나를 위해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었나 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