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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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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우리 집 거실에서 베란다로 나가는 문 위에는 작은 풍경이 하나 걸려 있다. 작은 술잔을 엎어놓은 것 같은 본체 아래로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풍판이 매달려 있는 형태의 것이다.


그게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디였는지는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날도 그와 함께 장도 보고 빵도 사고 할 겸 외출했다가, 근처에 있는 한 리빙브랜드 샵에 들어가 정신없이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었다. 이런 매장에는 가끔 온라인 몰에는 올라오지 않는 재고정리 할인 품목 중에 제법 쓸만한 것들이 나오기 때문에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그 근처에 갈 일만 있으면 어떻게든 가서 매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오곤 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적지 않은 수의 머그컵과 티스푼과 베개커버와 향초 종류를 원래 가격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집어왔고 그런 날은 무슨 큰 횡재라도 한 듯이 좋아했었다.


이 풍경은, 그러던 중에 사 온 것이다. 당시에 재고 정리로 나와 있던 풍경은 두 개였는데 둘 중 뭘 살까를 놓고 그지없이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풍판으로 매달린 물고기 모양이 귀여워서 그냥 지금의 것으로 사 왔다. 그렇게 사 온 풍경은 베란다 문 위에 매달린 채 바람이 불어 들어오면 그에 맞춰 딸랑딸랑 소리를 냈다. 가끔 태풍이 오거나 이상하리만큼 바람이 센 날이 되면 저로서는 꽤 위급하게 새된 소리로 울리기도 했다. 그러면 그와 나는 허둥지둥 집안을 뛰어다니며 열려 있는 창문들을 다급히 닫곤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를 정리하고 홈트를 하려니 정말 간만에 아 오늘 날씨가 좀 후끈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문을 열어둔 채로 홈트를 했다. 그러고 있자니 문으로 넘어 들어온 바람에 부딪힌 풍경이 아주 오랜만에 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가을이 깊어지고 몸을 웬만큼 움직여도 덥지는 않았던 그 무렵부터 환기를 할 때나 청소를 할 때가 아니면 문을 잘 열어두지 않고, 특히나 얼마 전까진 날씨도 추웠던 데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철 모르는 눈까지 내려 문을 꼭꼭 닫아둔 채 살고 있었구나 하는 실감이 그 딸랑거리는 풍경소리를 들으니 비로소 났다.


시간이 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새삼스레 내 주변의 모든 것에는 다 떠난 사람이 묻어 있어서 나는 아무래도 이 사람을 영영 잊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번 더 했다.


96cc0d1400b3d0bf49b5f491f976e4db.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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