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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그와의 인연보다 오래된 것은 딱 한 가지뿐이다. 글 쓰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그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를 때부터 글을 썼다. 어렸을 땐 재미있게 본 만화책의 다음 이야기를 열심히 공상해서 실핀으로도 열 수 있는 조악한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에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썼고 고등학교 때는 따분한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혼자서 단편소설을 썼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리고 심장의 한 부분이 통째로 뜯겨나간 것 같은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지금에조차도, 그가 사라져 버린 내 인생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자문자답하고 있는 이 순간에조차도 무언가를 쓰는 행위만큼은 온전한 나의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꽤나 오랫동안 나는 내 글을 미워했다. 아주 오랫동안 내게 글이란 생업으로 삼기에는 턱없이 모자라고 취미의 영역으로만 남겨두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애매한 존재였다. 글은 내 앞에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속 편하게 저를 잊고 살게끔 나를 놓아주지도 않았다. 그다지 길지 않은 살아온 시간 내내 나는 나를 쪼개 뭔가를 쓰다가 절망하고, 그래서 다시는 글 같은 건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가 결국은 뭔가를 쓰고 싶다는 알 수 없는 욕구에 뒷덜미를 잡혀 끌려오고, 그러다가 다시 절망하기를 몇 년 주기로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그 징글징글한 과정은 열애와 결별을 반복하는 아주 변덕스러운 커플의 사랑싸움 정도에도 비교할 수 없다. 감히 비교를 하자면 무병 같은 것에나 비기면 될까.
그런 주기에 따라 나는 또 슬슬 내 글이 미워지고 있던 참이었다. 소일거리 이상은 될 수 없는 주제에 기어이 내 의식 한 구석에 들러붙어 나를 좀먹어가는 글이 나는 못 견디게 미웠다. 그 시간에 잠이라도 한숨 자면 피곤이라도 풀릴 텐데. 재미있는 예능을 보면서 웃기라도 하면 스트레스라도 풀릴 텐데.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으면 기분이라도 좋아질 텐데. 그런 지극히 1차원적인 효용조차도 없으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주제에 떼쓰는 아이처럼 내 옆에 들러붙어 뭐라도 써내라고 끊임없이 나를 졸라대는 내 글에 대한 혐오감에 치를 떨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에, 정작 영원히 내 옆에 있어줄 것 같은 사람은 떠나고 원수 같던 내 글만이 내 곁에서 나를 지키고 있다.
매일 한 꼭지씩, 백 회 가까운 글을 쓰는 동안 이 브런치의 구독 수는 50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조금 늘었다 싶은 구독 수는 며칠 후에 보면 되레 몇 줄어들어 있기도 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나만의 슬픔과 절망에도 힘겨운 세상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아 백일 동안 청승을 떠는 글을 '즐겁게' 읽는 사람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으니까. 실제로 얼마 전 이 브런치의 글들을 봐주신 어떤 분에게서 '매우 읽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글들이었다'는 평가를 들은 적도 있다.
아마 그간 쓴 다른 글들이었더라면 아 세상엔 이 글이 존재할 필요가 없구나 하는 생각에 진즉 글을 접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내가 생각해도 당황스러울 만큼 뻔뻔하고 의연하게 계속 쓰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까지 읽어주는 사람의 반응에 철저하게 무관심하게, 오직 나만을 위해 글을 써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나는 내가 치유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많이 울고, 더러는 웃기도 하고, 가끔은 다시 읽으면서 민망해하고, 생각에 잠기고, 먹먹해지고, 한숨을 내쉬고,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글을 쓰면서 살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에 이런 순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야 알았다. 아마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이 일을 이런 식으로 풀어놓지 못했더라면 나는 지금쯤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내 글을 마냥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글은 내게는 아주 오래된 악우(惡友)이니까. 그러나 가끔 살다 보면 제대로 된 원수가 어설픈 친구보다 나은 순간도 있다. 치유되지 않는, 혹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를 갖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어디에든, 뭐라도 써보시기를 진심으로 권해드리고 싶다. 잘 쓸 필요도 없고 아무도 읽지 않아도 좋다. 그 글을 쓰기 위해서 나 자신과 마주하고, 나 자신과 깊은 대화를 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니까. 이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