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가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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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나의 거의 모든 '생활'은 그에게서 배운 것이거나 그가 하던 것들을 흉내 내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 흐트러진 침대를 어떻게 정리하는가, 섬유향수는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뿌리는가, 청소기를 밀 때 집중적으로 밀어야 하는 곳은 어떤 곳인가 하는 것 등등. 요즘 나의 일상은 예전의 그가 뭘 어떻게 했는가를 떠올려 필사적으로 따라 하는 것들로 점철되고 있다.


그가 늘 그랬듯,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토퍼까지를 전부 걷어내고 침구를 새로 깐다. 물론 예전에 그가 하던 것만큼 꼼꼼하고 야무지게는 못하고, 그냥 이불 한 번 와락 걷었다가 좀 털어서 다시 까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나로서는 그것도 분에 넘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 주장해 볼 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이렇게 해 줘야 그 참에 먼지도 털어내고, 침구가 지나치게 숨이 죽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었다. 맹세컨대 그 일을 그가 할 때는 내심 그 귀찮은 짓 좀 안 하거나 덜 하면 안 되나 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알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든 침구를 벗겨내 털어서 다시 까는 짓을 하고 있으니 참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하다.


문득 달력을 보니 7월도 어느새 다 간 모양이다. 오늘 아침엔 침구를 다시 깔면서 침대에 놓아둔 쿠션 커버들을 다 벗기고 새로 바꾸었다. 그것만으로도 늘 보던 그 침대와는 조금 다른 침대가 된 것 같다. 그는 아마도 이런 산뜻함이 좋아서, 내게도 그 기분을 맛보게 해 주고 싶어서 매주 그 귀찮음을 무릅쓰고 침구 정리를 했을 것이다.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이런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은 언제나 참 씁쓸한 일이다.


아무리 요즘은 봄 가울이 없고 여름 아니면 겨울뿐이라고는 해도, 결국 '진짜' 여름은 7월과 8월의 두 달 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중 한 달 동안 나름대로 그의 부재를 견디면서 보냈다. 물론 아직도 여름은 한 달이나 남았고, 내게는 그가 없이 보내야 할 많은 계절들이 남아있다. 나는 아마도 한동안은, 철이 바뀔 때마다 그가 없는 첫 가을, 첫 겨울, 첫 연말, 첫 새해 하는 식의 딱지를 붙이겠지. 그리고 더 이상 그 말을 붙일 데가 없어지면 그때는 또 무슨 핑계를 대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까. 요즘 들어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그를 '잊는다'는 계획 혹은 방침 자체가 없었다. 내가 조선시대라면 홍살문이라도 받을 정도의 열녀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건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냥 그의 부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정도가 아닐까. 그의 이야기를 하며 완벽하게 무덤덤해질 날 같은 건 아무래도 오지 않을 것 같으니까.


20대 시절에 우리는 듀스를 좋아했다. 그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등지고, 남은 사람의 첫 솔로 앨범 군데군데 묻어있는 분노와 슬픔에 괴로웠다가, 두 번째 앨범에 들어있는 어떤 노래를 듣고 나는 그에게 말했었다. 이제 보내줬나 보다. 며칠 전 저녁에 문득 그 생각이 나서 노래를 듣다가 그 생각이 나서 또 한참을 울었었다. 이 여름이 이렇게 가득한 지금, 또 잠시 막막해진다. 그가 떠난 여름이 몇 번이나 지나면 의연하게 그의 사진과 눈을 맞출 수 있을까.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함께하던 우릴 추억하는 지금
어떤 무엇이 나에게 이보다 더 소중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니
그 여름은 언제나 내 맘 가득히
파란 바다는 내 귓가에 속삭여 주네
친구야 너도 느낄 수가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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