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1

-108

by 문득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폰에 깔려 있는 어플로 내가 몇 시간이나 잤나를 체크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요 몇 달간 수면 패턴이 너무 급작스럽게 바뀐 데다 물리적인 수면 시간 자체가 좀 줄었기 때문이다. 예전엔 새벽 한두 시쯤에 잠들어서 아침 아홉 시가 조금 넘으면 조금만 더 잤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아주 힘들게 일어났다. 요즘은 밤 열한 시에서 열두 시 사이에 잠들고 다섯 시 30분에서 여섯 시 사이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일어난다. 그러고도 별로 졸리는 줄을 모르고 하루를 그냥 지낸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새벽까지 깨 있었기 때문에 자꾸만 뭔가를 먹게 되었다. 심지어 영화나 밀린 드라마를 보는 새벽시간에는 숫제 주전부리를 침대까지 들고 가서 먹는 일도 있었다. 요즘은 그런 일이 없다. 그가 떠나간 후 한동안은 마치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초콜릿으로 코팅된 크림파이 과자를 사다 놓고 하루에 한두 개씩은 꼭 먹었지만 지난 달 쯤부터는 그나마도 먹지 않고 있다. 섭취하는 열량 자체가 이렇게나 줄었는데도 가끔 저녁 대여섯 시쯤 출출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빼면 그다지 배고픈 줄도 모르고 하루를 그냥 지낸다.


요컨대 요즘의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에 비해 0.7인분 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다. 생물로서의 기본적인 욕구 자체가 예전의 0.7 정도로 줄어들어버린 기분이다. 그리고 그 날아가버린 0.3에 대해서 별다른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 나중에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먹고 자는 것뿐만이 아니다.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줄었다. 있던 것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내 그릇이 딱 요만큼이었다는 듯이 한계용량 자체가 줄어든 기분이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앞서 쓴 글에서 그와 나의 관계를 더운 여름날 부주의하게 한 주머니에 같이 넣어둔 초콜릿 두 개라고 쓴 적이 있는데 그건 정말로 그렇다. 그는 떠나면서 자신에게 엉겨 붙은 나의 일부분을 같이 가지고 가 버렸다. 그때 뜯겨나간 부분이 절반까진 아니라도 0.3 정도는 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렇게 뜯겨나간 부분은 이제 다시는 내게로 돌아오지 않겠지.

그런 반면에 요즘 나는 예전에 비해 조금 부지런해졌다. 부지런해졌다는 건 다른 게 아니라 그를 믿고 그에게 음으로 양으로 미뤄두었던 일들을 더는 외면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이제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한다'는 것을 안다. 모르는 척 미뤄두면 답답한 사람이 알아서 샘을 파던 시절은 이젠 끝났다는 걸 안다. 내가 치우지 않으면, 내가 정리하지 않으면, 내가 체크하지 않으면,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그 일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 더운 여름날 외출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온 와중에도, 다른 거 다 차치하고 에어컨 좀 틀어놓고 편하게 앉아 찬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은 것을 미뤄놓고 내가 먼저 챙겨야 하는 것들을 챙긴다. 그러다가 짜증이 나서 나도 모르게 뭐가 해도 해도 끝이 없냐고 투덜거려 놓고는, 그것이 예전에 그가 종종 하던 말임을 떠올리고 쓰게 웃는다. 응, 이래서 그랬던 거구나. 그런 걸 지금에서야 알다니, 나도 참 한심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그의 곁에서는 안 하던 것들을 0.1쯤 더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토털 0.8인분이다. 아마 요즘 내가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가며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그 날아가버린 0.2를 다시 채우기 위한 것들이겠지만 아직까지는 어림없다. 나는 아마 꽤나 오랫동안 0.8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과연 다시 1이 될 수 있긴 한 건지, 그 문제에 대한 답은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세상 아무도 모를 것이다.


어쩌면 남은 내 인생은 잃어버린 0.2에 대한 끊임없는 환상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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