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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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이 집에 이사 온 지가 10년이 넘어가는데 난 내 책상 쪽으로 나 있는 창문이 동향이라는 걸 요즘에서야 실감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청소와 할 일을 마치고 글이라도 한 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어김없이 햇빛이 눈부시게 내 책상을 향해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깨닫는 '사실'은 부동산 중개사와 함께 집을 보러 다닐 때 집이 동향이니 남향이니 하는 말로만 듣던 것과는 조금은 다른 감흥이 있다.


어제는 간만에 '제대로' 더운 날씨였다. 습도가 높아서 더운 것이 아니라 날씨가 아주 정석적으로 덥다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보니 아침 일곱 시도 안 됐는데 온도가 28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쨍하니 맑은 하늘에 이른 햇살이 화살처럼 내리 꽂히고 있었다. 아. 계급장 떼고 제대로 붙자는 더위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청소를 마치고 책상에 앉았다.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 오늘 분의 청승을 떨어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았다. 쨍하게 파란 하늘은 수십억 광년 멀리 떨어져 있는 우주의 어느 끝까지라도 한눈에 보일 것처럼 맑았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그 어딘가에서 나를 내려다보기에 시야가 꽤 잘 나오겠다고, 그런 생각에 웃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멍하니 하늘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가, 나는 비명을 지르며 핸드폰을 들고 창가로 달려갔다. 옆의 아파트 건물 위로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작은 조각구름이 있었다. 방충망을 열어젖히고 나는 다급하게 AI에다 카메라를 켜라고 외쳐서 켰다. 그 순간만은 잠시 결전을 앞둔 호그와트의 마법사가 된 기분이었다. 줌을 잔뜩 당겨 화면에 잡히는 걸 확인했다. 역시 채운(彩雲)이었다. 이젠 하다 하다 별의별 걸 다 보여주는구나. 사진을 찍고 나서 서둘러 방충망을 닫은 후,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여름은 아직 한창이다. 아마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날이 오려면 다음 달 한 달은 꼬박 지나가야 할 것이다. 내게는 여전히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쌓여있고 내가 돌봐야 할 나의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그가 떠났지만 그것으로 내 인생의 모든 고민과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슬프지만, 나는 또 그렇게 하루하루 한 발 한 발 내 남은 시간들을 살아가야 한다.


괜찮아. 잘 될 거야. 그냥 그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 방의 창문 너머로 보인 그 조그만 채운처럼. 이 길지 않은 글을 여기까지 쓰고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까지 분명히 있었던 채운은 그새 다 사라지고 없다. 사진을 찍어두길 잘했다 싶다. 아마도 이제 그곳에 간 지 넉 달도 채 안 되는 그의 짬밥으로는 잠깐 나타나는 요만큼의 조그만 녀석밖에 만들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참, 욕본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혼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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