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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본의 아니게 요즘 예뻐졌다고,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는 말을 더러 듣는다. 살이 정말 많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가 떠나고 난 후 내 몸무게는 앞자리가 바뀌었고 그래서 입던 옷이 죄다 커져서 단추와 지퍼를 풀지 않고도 바지를 입고 벗는 게 가능해졌다. 그래서 옷을 몇 벌 새로 샀다. 그런데 그 새로 산 옷들도 요즘 많이 헐렁해졌다.
다이어트에 관한 우스갯소리로 운동을 열심히 하면 그냥 튼튼해질 뿐이고 먹는 걸 줄여야만 살이 빠진다는 말이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내게 다이어트는 아주 요원한 일이었다. 그는 절대로 먹는 걸로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먹을 거 다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살을 빼기에는 나는 몸을 놀려서 뭔가를 하는 것을 심각할 정도로 싫어하는 의지박약이었다. 그의 곁에서 살아가던 긴 시간들 중 예쁜 옷 한 번 입어보지 못하고 지나가버린 내 20대 30대가 아쉬워져 지금이라도 살을 좀 빼야겠다는 발작적인 생각이 든 순간이 몇 번은 있었다. 그러나 대략 저런 이유로 나의 다이어트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슬그머니 중단되었다. 물론 그에 앞서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나가는 말로라도 나의 늘어난 몸무게를 타박하지 않았던 그의 태도와, 그런 그를 믿고 스스로에게 너무나 쉽게 면죄부를 주어버린 나의 나태함에 있었을 것이다.
먹는 걸 줄여야만 살이 빠진다는 말은 일단은 맞는 말인 것 같다. 그가 떠나고 난 후 내가 특별히 뭔가 '운동'을 하고 있진 않다. 그가 있던 시절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며칠씩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살았었지만 요즘은 상담도 받으러 다녀야 하고 백중 기도를 올리러 절에도 가야 하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그를 보러 봉안당에도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외출이 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외출을 할 때마자 꽃을 사 온다든가 마트에 가서 떨필요한 것들을 몇 가지씩 사 온다는 핑계로 조금 걷고 있는 정도,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맨손체조를 하는 것 정도다. 그러니 운동량이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신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이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줄었다. 요즘 내가 먹는 건 두유 한 잔과 열량 1000 킬로칼로리 내외의 식사 한 끼, 구운 계란 두 개와 요거트 하나, 그리고 열량이 거의 없는 커피 두 잔 정도가 전부다. 그가 떠난 후 한동안은 초콜릿이 코팅된 파이 과자 종류를 사다 놓고 알 수 없는 헛헛함에 시달릴 때마다 하루에 두세 개씩은 먹곤 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그것도 구운 계란으로 바꿨다. 이 식단은 내 나름대로 넉 달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서 공복에 시달리지 않으면서도 내가 귀찮지 않게 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나름의 최적화 식단인 셈이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일을 하다가 오후 네 시쯤이 되면 출출한데 뭣 좀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온다. 그때쯤 계란 두 개를 꺼내와 책상 앞에 앉아 껍질을 까서 우물우물 먹는다. 오빠가 이 꼴을 본다면 질색하겠지. 그런 생각을 한다. 그는 닭도 달걀도 썩 좋아하지 않았고, 구운 계란을 한 판이나 사서 냉장고 안에 재어놓고 하루에 두 개씩 꺼내먹겠다는 말을 한다면 대번 눈살을 찌푸리고 그거 물려서 어떻게 매일 먹느냐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가 지금 내 곁에 있었더라면 내가 끼니를 줄이지 않고도 섭취하는 열량만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고, 또 온갖 곳을 뒤져 저탄고지니 키토식이니 하는 생소한 레시피들을 잔뜩 검색해서 하나하나 검증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게 얼마나 손 많이 가고 수고로운 일인 줄도 모르는 채로 그가 해주는 밥들을 꼬박꼬박 맛있게 잘 먹고 있었을 테지.
나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좀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물론 그랬으면 살은 지금만큼 빨리, 많이 빠지지 않았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