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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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요즘 본의 아니게 무척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꽃병에 물을 갈고 꽃대를 조금씩 잘라 주고, 침대를 정리하고, 널어놓은 빨래를 갠다. 그 후로는 청소를 하고, 간단한 아침 운동을 하고, 책상에 앉아 글 한 조각을 쓴다. 간밤에 핸드폰으로 온 많은 알림들 중에 확인할 건 확인하고 지울 것은 지운다. 그래 놓고 약간의 붕 뜬 공백을 견디면 9시가 되고, 스스로 정해 놓은 '업무시간'이 된다. 아홉 시쯤 자다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아 메일부터 확인하던 몇 달 전의 내가 이 모양을 본다면 기함을 할 일이다.


넉 달쯤 약간의 가감과 순서 정리를 통해 나름대로 확립된 이 루틴은 내 나름대로 일과 시간 중에 다른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최적화된 프로세스다. 그러나 이 루틴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요즘 내 기상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침대를 정리하고 빨래를 개는 것까지를 다 해도 보통 여섯 시 반 정도면 끝난다. 그 후로 청소를 해야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진공청소기를 아침 일곱 시에 켜는 것은 옆집과 아랫집에 민폐일 것 같다. 그래서 내 아침 청소는 항상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지노선인 여덟 시로 밀린다. 그러면 대개 한 시간 반 정도의 애매한 공백이 남는다.


이 한 시간 반 동안 집안 꼴은 엉망진창이다. 청소기를 밀면서 정리해야 될 이것저것을 하나도 정리하지 않고 내팽개쳐 둔 덕분에 집안은 이럴 거면 굳이 청소를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로 어수선하다. 특히 토퍼부터를 전부 걷어다 다시 까는 목요일 아침이 제일 심하다. 책상 옆에 붙어있는 서랍장은 제멋대로 끄집혀 나와 제 자리를 이탈해 있고 집안의 모든 쿠션이며 방석들은 먼지만 대충 털어낸 후 제멋대로 엉켜서 쌓여 있다. 기껏 물을 갈아놓은 꽃병도 싱크대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을 뿐 제 자리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너저분한 꼴을 해놓고, 나는 '청소기를 켜도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여덟 시를 기다리며 아침식사 겸 두유 한 잔을 마시고, 핸드폰을 확인하고, 브런치에 오늘의 이야기를 쓴다.


그가 있을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그의 청소 시간은 우리가 외출하는 날이 아니라면 점심을 먹고 설거지까지를 다 하고 난 후였다. 그 시간쯤 하는 청소라면 이웃집의 눈치를 보느라 한 시간 반이나 기다렸다가 청소기를 밀 필요도 없을 것이고 사람의 집중을 방해하는 이 다분히 의도된 너저분함 속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일과 중에 청소를 하느라 시간이 조각나는 게 싫다고 해도 그라면 단연 오후에 청소를 하는 것을 택했을 테지만 나는 일과를 방해받느니 아무도 없는 아침 시간에 한 시간 반의 공백을 견디기로 마음먹은 셈이다. 이것 또한 참 그와 나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 거면 차라리 욕 좀 먹더라도 빨리 청소기부터 밀던가. 그라면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잠을 한 시간쯤 더 자고 일곱 시쯤 일어나 시작하면 30분만 이러고 있으면 되잖아. 그러게. 어쩌면 한 시간쯤 늦게 일어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글 쓰는 일을 먼저 하고 꽃병에 물 가는 것부터를 나중에 하면 이 청소를 하다 말고 그 사이에 딴짓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불편한 공백은 많이 줄일 수 있겠지. 그러나 그런 걸 모르지도 않으면서도, 나는 미련스럽게 아침에 일어나 다른 일들을 죄다 해 놓고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청소기를 쓸 수 있는 여덟 시를 기다리느라 이 두서없는 집안 꼴을 한 시간 반이나 견디고 있다.


참 너답다. 그라면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하긴, 내가 평생을 사랑한 건 결국 그런 앞뒤 꽉 막힌 너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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