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맑은 하늘

-122

by 문득

며칠간 내내 비가 내렸다. 이러다 세상이 다 떠내려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폭우이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잠시 비가 그치면 찌뿌둥하게 흐린 하늘 아래 바닥이 발에 쩍쩍 들러붙는 지독한 습도가 사방에 가득했다. 밤이 되면 무슨 이벤트라도 하듯 천둥 번개가 번쩍거렸다. 창문을 열어놓을 수 없어 그다지 덥지는 않은데도 에어컨을 켜야 했고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환기를 좀 하려고 창문을 잠시 열어놓고 한눈을 팔면 그 사이에 들이친 빗발로 바닥이 엉망이 되어있고, 적당히 좀 하라고 투덜거리며 바닥을 닦았다. 그런 며칠이었다.


오빠 이번 금요일이 백중이야. 그날은 나 밖에 나가서 되게 빡세게 돌아다녀야 하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창밖을 내다보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날 절에도 가야 하고 오빠 보러 봉안당도 가야 하는데. 그간 절에는 매주 갔고 봉안당도 틈만 나면 갔지만 하루에 두 군데 동시에 가 본 적은 없단 말이야. 가뜩이나 초행길인데. 비만 좀 안 오게 해 주면 안 될까. 그게 힘들면 저번처럼 발 한 번 잘못 디뎌서 신발 안까지 물 들어오는 그런 폭우만이라도 좀 자제해 주면 안 될까. 하긴 그렇게 매사가 오빠 마음대로 될 것 같았으면 나한테 로또 번호라도 하나 가르쳐 줬겠지.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거짓말처럼 갠 하늘로 햇빛이 비치고 있다.


백중은 저승의 문이 활짝 열려 미처 천도하지 못했던 많은 원혼들이 저승으로 가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백중이 지나고 나면 당분간은 이승을 헤매는 원귀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잔치를 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백중이 정말로 그런 날이라면 모르긴 해도 오늘 날씨는 그런 날에 아주 걸맞은 날씨인 것 같다. 역시나 본인 피셜 어딜 가도 날씨 운 하나는 좋다던 그의 말은 이런 식으로 또 실현되는가 싶기도 하고.


이쯤에서 생각해 본다. 나는 정말로 그가 좋은 곳에 가기를 바라는 건지. 물론 그 마음은 당연하다. 매주 절에 갈 때마다 나는 연꽃초 하나를 사서 그의 생년과 이름을 적어 넣고 바라는 바에 극락왕생과 업장소멸이라는 두 단어를 쓴 후 불탑 앞에 바치고 한참이나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 여기서 너무나 고생만 했고, 마지막엔 바로 곁에 있는 내게조차 내색하지 않고 몸의 통증을 참고 견디다가 떠난 사람이기에. 거기서는 부디 돈 걱정 하지 말고, 인간관계로 속 썩지도 말고, 아프지도 슬프지도 말고 즐겁고 행복하기만을, 늘 그렇게 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승의 모든 미련을 놓고 훌쩍 떠나서 나 같은 건 잊어버리기를 원하느냐 하면 선뜻 그렇다고는 대답하기 힘들다. 비록 내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가 느끼지 못할지라도 내 곁에 있었으면 하고 나는 늘 내심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마음 모두 진심이라 나는 어느 쪽이 진짜 내 마음인지를 잘 모르겠다. 뭐, 왔다 갔다 하면 되지. 그런 속 편한 결론을 내린다. 몇 년 전 대대적으로 히트한 어느 드라마의 엔딩처럼, 본인의 세계로 돌아간 남자 주인공이 수시로 여자 주인공을 만나러 두 개의 세계를 왕래하듯이.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냐고 항변한다면 내게도 할 말은 있다. 그러면 그런 식으로 몰래 도망갔으면서 그 정도도 안 하려고 했냐고.


세상을 집어삼킬 듯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춘 어느 맑은 날, 나는 다시 한번 그의 무사안녕을 빈다. 거기서는 부디 돈 걱정 하지 말고, 인간관계로 속 썩지도 말고, 아프지도 슬프지도 말고 즐겁고 행복하기만을. 그리고, 당신 없는 이 풍진 세상에 혼자 남아 버둥거리고 있는 나를, 그래도 까맣게 잊어버리지는 말기를. 그것까지를 바라기에는 아직은 내가 많이 속이 좁고 옹졸하며 용렬하다고.




매거진의 이전글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