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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음력 7월 15일, 백중이었다. 불교에서는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해내기 위해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 존자가 여러 수행승에게 공양을 올리던 우란분절이라고도 하고 일가 육친 중에 돌아가신 사람이 있을 때 제를 지내면 망자가 저승으로 편안하게 갈 수 있는 날이라고도 한다.
간만에 나름 분주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점심 시간 안에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 예약취사도 해놓아야 했고 저녁쯤에 마실 커피도 미리 내려놓아야 했다. 나는 그간 백중 기도를 하러 절에도 다녔고 그를 보러 봉안당도 갔었지만 두 곳을 하루에 다 가본 적은 없었다. 그러니 절에서 봉안당까지의 길은 초행인 셈이었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노선도와 정류장을 꼼꼼하게 찾아봐야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일단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며칠간 내린 비에 습도가 다 쓸려가버린 것인지 간만에 눅눅하지 않은 더운 날씨였다. 버스를 타러 내려간 지하차도의 곳곳에는 물에 휩쓸린 흙더미들이 남아 있었다. 며칠간 큰 비가 오는 동안 여기도 난리였겠구나 하는 때늦은 생각이 들었다.
늘 타던 버스가 오늘따라 도착예정시간이 너무 늦었다. 그래서 노선도를 보고 다른 버스를 탔다. 몇 주 전에 꼼꼼하게 살피지 않고 대충 탔다가 영 엉뚱한 데 서는 바람에 한참을 걸어간 적이 있어서 기사님에게 물어봤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타는 손님마다 그 절 가느냐고 묻네.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대신 대답했다. 백중이라 그래요.
지난 6월 말의 초제 때 사람이 많았었다. 초파일도 아닌데 절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 본다고 했었지만 어제는 그 초제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연꽃초에 불을 붙이고 불이 심지에 제대로 옮겨붙기까지 잠깐 기다렸다가 탑 앞에 봉헌하고 탑을 향해 손을 모으고 깊이 허리를 숙였다. 넋에게 올리는 종이옷의 겉봉에 이름과 본관 따위를 쓰는 것은, 대략 지지난 주쯤부터 버벅거리지 않게 되었다. 늘 하던 대로 제사상에 절을 하고, 벽에 붙은 그의 이름 앞에서 잠깐 기도를 하고, 지난 초파일에 그를 위해 달아놓은 연등 앞에도 들러 인사를 하고 나왔다.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러 간 탑 앞의 그의 이름을 써놓은 연꽃초에 붙은 불이 놓여진 초들 중에 제일 크고 기세가 좋아서 잠시 웃었다.
이제부터는 두 시간쯤 들여 봉안당으로 가야 했다. 잘 타고 잘 내리기만 하면 별 문제는 없을 터였지만. 절에서 봉안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고, 두 노선 다 처음 타보는 버스들이었다. 그래서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조금 생경했다. 그중 먼저 탄 버스는 그와 내가 자주 빵을 사러 가던 인근의 한 유명한 빵집 앞을 지나갔다. 어쩐지 아련한 기분이 되어 나는 고개를 모로 틀면서까지 그 빵집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봉안당에는 두 분이나 새로 안치되러 오신 분들이 있었다. 그의 봉안당 앞에 갖다놓을 꽃을 좀 사려고 인포메이션 데스크 앞에 붙어 있다가, 고인의 영정을 향해 절을 하는 유가족분들의 모습에 나도 같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그 분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으셨고 어떤 마지막이셨을지는 모르겠지만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는 똑같은 애통함이고 슬픔일 터이니까. 그의 봉안당 앞에 꽃을 갖다놓고 또 한참이나 내가 할 말들을 주절거렸다. 나는 잘 있고, 오빠도 잘 있었으면 좋겠고, 그치만 나 너무 생까지는 말아달라는, 그를 만나러 갈 때마다 늘 하는 그런 말들을.
그렇게, 그를 떠나보낸 나의 첫번째 백중은 끝났다.
집에 오니 다른 생각이 아무 것도 안 날만큼 배가 고팠다. 예약 취사를 걸어놓고 나간 밥솥에는 딱 맞게 밥이 되어 있었다. 이것 봐. 내가 이때쯤 들어와질 거라 그랬지. 내가 옛날부터도 오빠보다 시간 대중 하는 거는 잘했잖아. 냉장고 안에는 냉동 설렁탕이 한 팩 남아 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와 함께 먹으려고 업력이 백년이 됐다는 한 설렁탕집에서 주문했던 것이었다. 둘 중 한 팩은 그의 삼우제를 지내고 나서, 며칠간에 걸친 본의 아닌 단식을 깨면서 먹었다. 남은 한 팩을 먹는 날이 있다면 오늘이야말로 제격일 것 같았다.
핸드폰 어플을 켜 보니 오늘 하루 걸은 거리가 5킬로미터 남짓이었다. 뻐근해 오는 종아리를 주무르며 책상 위 그의 액자를 향해 말을 걸었다. 뭐 어러 가지로 부족했을 것 같고 마음에 안 차는 점도 많겠지만 나는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거라고. 알잖아. 나 원래 이런 거 영 젬병인 거. 나 진짜 딴에는 열심히 한 거야. 내년엔 좀 더 잘해보도록 할게.
그나저나, 이제 다음주부터는 그를 위해서 매주 뭘 하면 될까. 생각지 못한 숙제가 하나 생긴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