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광복절인 건 원래부터 알았다.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역사적인 의미도 의미이려니와 이 더운 8월의 한가운데에 쉬어갈 수 있는 핑계를 주는 고마운 날이므로. 프리랜서에게도 공휴일은 소중하다. 직업의 특성상 갑이 쉬지 않으면 따라 쉴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올해처럼 앞뒤로 주말이 끼어 연휴가 되어버리면 작은 휴가를 선물 받은 느낌마저 든다.
거기까지는 원래 알았는데, 오늘이 말복인 건 아침에 일어나 어제 미처 확인하지 못한 핸드폰 알림들을 지우다가 말복에 먹을 만한 배달음식 광고가 잔뜩 온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에게 복날은 '그 핑계로 닭 먹는 날'이었다. 그도 나도 닭 이상의 하드코어한 보양식에는 딱히 취미가 없었고 닭 정도가 딱 적당했다. 매년 초복이 되기 전 그는 올해 복날에는 각각 어떤 닭 음식을 해먹을 건지를 고민하느라 며칠을 보내곤 했다. 삼계탕, 백숙, 닭볶음탕, 찜닭, 초계국수, 닭 칼국수, 가끔은 오븐에 구운 닭요리 등등. 그는 닭고기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내가 닭 먹는 걸 구경하는 것만은 좋아했다. 그래서 가뜩이나 더운 복날 땀을 뻘뻘 흘리며 만든 음식을 차려놓고 본인 몫은 먹지도 않고 음식을 먹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싱긋이 웃고 있던 것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랬던 복날은, 올해는 거래처에서 챙겨주시기까지 한 초복을 제외하고는 그런 날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지나가 버렸다. 오늘은 말복이지만 나는 그냥 라면을 끓여 먹을 예정이다. 오늘이 복날인 걸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 일정이 바뀔 일은 없다. 이제 와서 나 혼자 먹을 음식을 하겠다고 이 덥고 꿉꿉한 날씨에 밖에 나가 닭을 사고 부재료를 사고 지금껏 해보지도 않은 무언가를 만들겠다고 레시피를 찾아볼 정도의 정성이 이제 내겐 없다.
생각해 보면 앞으로도 내내 이런 식이 아닐까. 그가 애써 나를 위해 챙겨주었던 많은 날들에 이제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사고, 핼러윈이라고 사탕을 사고, 크리스마스라고 케이크를 사는 그런 일들이 내 인생에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물론 나는 사람의 인생은 일조일석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거라는 사실 하나만을 지난 넉 달간 뼈저리게 배웠다. 지나간 4월 7일 밤까지도 나는 넉 달 후의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그러니 지금 이렇게 단정 짓는 것 또한 앞날을 모르는 미욱한 인간의 급발진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가 사라진 내 인생에는 이제 더 이상의 '특별함 '은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다. 나의 특별함은 대부분 그와 엮여 있는 것이었고, 그런 그가 떠난 지금 그 모든 것들은 일시에 빚이 바래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면 그가 있어서, 그의 덕분에 나는 지난 27년간을 매일매일 아주 재미있게 살았다. 이제부터는 무던하게, 덤덤하게, 하루하루 버티는 인생도 살아봐야 하는 거겠지.
기분이다. 오늘 끓여먹을 라면에는, 닭까지는 아니고 계란이라도 하나 풀어 넣는 걸로. 그래도 복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