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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거의 꾸지 않는 편이다. 아니, 사람은 누구나 하룻밤에만 몇 가지씩의 꿈을 꾼다고 하니 꿈을 잘 기억 못 한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4월 8일 새벽, 내게 이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나는 동안도 내 꿈은 내게 아무것도 예고해 주지 않았으니까.
그랬던 나는 요즘 그가 떠나고 난 후로 가끔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생생한 꿈을 꾸고 새벽에 벌떡 일어나 앉을 때가 있다. 그리고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더듬더듬 집어 그 꿈이 무슨 꿈인지를 검색해 보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 꿈들은 제법 해석대로 이루어졌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부스럼으로 고생을 하는 편이었는데, 언젠가 한 번은 꿈속에서 내가 그의 허벅지에 난 종기를 짜 주고 있었다. 그 종기는 제법 동전만 하게 컸고 보기에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 종기를 짰고 그 종기에서는 마치 우유 같은 희뿌연 고름이 물컥물컥 쏟아졌다.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바에 의하면 좋은 꿈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후로 정말로 예상치 못한 좋은 일이 생겼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도 나는 좀 묘한 꿈 하나를 꾸고 기상시간보다 30분쯤 일찍 잠에서 깼다.
이제 내 곁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그가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내 인생에 닥쳐올 일들을 미리 예고해 주려고 애쓰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그가 떠나간 후로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프든, 얼마나 지극한 슬픔을 겪고 있든 내 인생은 마치 '그건 그거고' 하는 식의 일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불행에는 총량이 있다지 않느냐고, 내가 지금 이만큼이나 슬프고 괴로운데 다른 일들은 좀 나를 안 괴롭히고 가만히 놔둬주면 안 되겠느냐는 항변 따위는 '그건 네 시정이고'를 외치는 많은 다른 일들 틈에 순식간에 함몰돼 버린다. 그런 게 답답해서, 안타까워서 어떤 식으로든 내게 미리 힌트를 주려는 것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이왕 그런 식으로 남의 꿈에 끼어들어 이것저것을 보여줄 능력이 된다면 본인이 직접 좀 출연해 주면 안 되는 걸까. 나는 그가 떠나간 후 그를 한 번도 꿈속에서나마 보지 못했다. 윗부분에 쓴 저 종기를 짜주는 꿈에서조차 그는 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냥 막연하게 내가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오늘처럼 생생한 꿈을 꾸고 일어난 아침에는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못 본 게 벌써 넉 달도 넘었는데. 우리 얼굴 보고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웬만하면 좀 꿈에라도 다녀가면 안 되겠느냐고. 얼굴 잊어먹겠다고. 정작 그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뒤늦게 알게 된 지인 중에는 그를 꿈에서 만났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 다리 건너 남들에게는 잘만 그렇게 찾아다니면서 정작 내 꿈에만은 오지 않으니, 이건 새삼스레 낯가리는 거라고 해야 할지 그것도 아니라면 뭔가 내게 미처 말하지 못한 마음의 앙금 같은 거라도 있는 건지.
이 자리를 빌어 정말 부탁하고 싶다. 그렇게 비싸게 굴지 말고 한 번이라도 좀 다녀가라고. 예전처럼 꿈을 안 꾸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남의 꿈에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틀어놓으면서 왜 본인은 안 왔다 가는 거냐고. 만나면 안 놔줄까 봐 그러냐고. 그러게.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슬그머니 자신이 없어지긴 한다. 그래서 꿈에라도 한 번 안 오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