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넘쳐났던 눈물이 많이 줄었다. 생각해 보면 49제를 지내기 전까지는 누가 어깨를 툭 치고 가기만 해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크리스마스 선물'의 도입부에 나오는, 인생이란 흐느낌과 훌쩍거림, 미소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흐느낌이 지배적이라는 말대로 나는 그냥 터지기 일보 직전의 물풍선 같은 상태였고 조그만 외부 자극이 있기만 해도 그 핑계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참 동안이나 소리 내 울었다. 그 터져 나오는 울음에는 횟수도 정도도 지속시간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무색하게 요즘 나는 많이 덜 운다. 아예 안 운다는 말은 아니다. 아직도 나는 매주 상담을 받으러 가면 어김없이 울어서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 상담실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그거야 워낙 특수한 경우이니 차치하고, 일상생활을 보내면서 갑자기 와락 울음이 터지는 일은 이젠 많이 줄었다. 그래서 가끔은 더없이 씁쓸한 기분으로 결국 나는 먼저 간 남편을 따라 죽는 열녀는 못 되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아주 범상한 하루였다. 아침에 일어나 정해진 일들을 하고, 아홉 시쯤부터는 책상에 앉아 일을 하기 시작했다. 메일을 읽고, 그에 대한 답신을 보내고,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도 켜면서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잠깐 쉬었다가 오후 일과를 시작했다. 그런 하루였다. 꼭 해야 할 전화 통화 하나가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아 자꾸 미루어지는 바람에 조금 짜증이 나긴 했지만, 뭐 그 정도일 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틀어놓은 텔레비전이 문제였다. 보지도 않으면서 틀어놓은 지나간 예능프로그램 VOD에서는 때마침 촬영 날 생일을 맞은 한 연예인을 위해 같이 방송을 하는 동료들이 미역국을 끓이고 케이크를 준비해서 조촐한 생일 축하를 해주는 장면이 지나갔다. 여기까지도 범상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올해 생일에는, 나는 혼자겠구나.
내 생일이 다가오면 그는 생일 선물과는 별개로 순전히 내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따로 장을 봤다. 평소엔 쳐다도 안 보던 한우 국거리를 사서 미역국을 끓이고 인터넷의 온갖 곳을 뒤져 신기하고 먹어본 적 없으면서도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요리를 찾아내 정말로 상다리가 부러지는 생일상을 차려내 왔다. 그와 내가 온 전국의 빵집을 다 돌아다녀보면서 먹어본 결과 케이크 하나만은 이 집이 최고라고 공인한 서울의 어느 빵집까지 가서 사 온 케이크에 촛불을 꽂아놓고 기꺼이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불러 주었다. 그렇게, 그날 하루만은 빼곡하게 행복한 하루였다. 그의 곁에서 사는 내내 그랬었다.
그러나 올해는 어떨지. 그날 누가 나를 위해 해피버스데이 투 유를 불러주긴 할까. 태어나 줘서 고맙다고.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해 주긴 할까. 아니, 내가 먼저 오늘 제 생일이에요 하고 말하지 않으면 누가 그날이 내 생일인 걸 알긴 할까. 생일 축하한다는 입에 발린 말이나마 한 마디 해 주긴 할까. 이쯤에서 울컥, 내가 이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가슴을 치받았다. 그래서 하던 일들을 죄다 팽개치고 또 소리 내 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실감 나서. 영영 내 옆에 있어줄 것 같던 사람을 내가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이 실감 나서.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도 울지 않을 수 있기에 무정하지만 내가 이제 조금 괜찮아졌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아직 그렇게까지 괜찮아진 건 아닌 모양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또 울고 있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