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아무리 빨리 해도 결국 늦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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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우리는 그 흔한 '깨붙'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와 내가 떨어져 있었던 건 그가 먼저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해 서울로 올라가고 나는 못다 한 학업 때문에 고향에 남아 있었던 2년이 전부다. 그 기간 동안도 우리는 장거리 연애 중이긴 했을지언정 일시적이라도 결별한 적은 없었다.


장장 27년을 갔던 그 길고 징했던 연애기간 중 유일하고 가장 거대했던 위기는 사귀고 나서 몇 달 지나지 않은 그 해 가을에 왔다.


사귀는 사이가 되기 전, 그냥 아는 오빠 동생으로 지낼 때부터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당시에 그는 유학 준비 중이었다. 잠시 다녀오는 그런 유학이 아니라, 아예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떠나는 그런 종류의 유학이었다. 당시에 그는 그리 많지도 않은 나이에 자신을 둘러싼 세상 모든 것에 질려버린 상태였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받지도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그는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되게 무겁고 무서운 말이구나 하는 뉘앙스 정도는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떠날 날이 가까워올수록 나는 혼자만의 가슴앓이에 시달렸다.


당시의 나는 '심심하면 눈물이나 짜는 그렇고 그런 여자'가 되지 않으려고 갖은 발버둥을 치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가 그리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자신의 출국을 이야기하며 이제 와서 교제하는 사이가 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고 미적거릴 때 오히려 내 쪽에서 그게 뭐가 어떠냐는 식으로 적반하장 큰 소리를 쳐댔었다. 내 감정 때문에, 그냥 내가 그 사람 옆에 있고 싶으니까 자기 잘 될 궁리를 하려고 힘들게 유학씩이나 가려는 사람을 붙드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적어도 당시의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랬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의 내가 지금보다 더 어른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단순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을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9월 말쯤 출국할 예정이었다. 그 날짜가 다가올수록 차마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속앓이는 점점 더 심해졌다. 그의 앞에서는 필사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로 힘든 나날이었다. 사람이 자리에 누워서 베개를 눈물로 적시는 게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가능하다는 걸 난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래 놓고도 다음날 그를 만나면 나는 또 역시나 개구진 연하 여친 행세를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의 내가 얼마나 같잖고 우습고 딱해 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된 어린 여자애가 제 감정을 속여본들 얼마나 완벽하게 속일 수 있었겠는지.


그리고 그렇게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던 9월 중순의 어느 날, 그는 내게 말했다. 네가 가지 말라면 안 갈게.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잘 되자고 가는 유학이고 그러려고 그렇게 힘들게 준비한 건데 가야지. 거기서마저 그렇게 대꾸했어야 옳았다. 그게 '자기 좋자고 남의 발목 붙드는 짓을 하지 않는 쿨하고 멋진 여자'가 취해야 할 태도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고작 스무 살에 불과했던 내가 쥐어짜낼 수 있는 쿨함은 거기서 박살나고 말았다. 결국 나는 눈물 콧물 다 짜면서 그에게 매달렸고 그는 인생의 궤도를 바꿔놓을 수 있었던 그 기회를 포기하고 내 곁에 남았다.


그리고 요즘 나는 가끔 그날 내가 한 짓을 후회한다.


그렇게 좋은 기회를 버리고 그 대신 내 곁에 남은 거라면 최소한 남들 사는 만큼은 살다가 갔어야 했다. 몇 살까지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이런 세상에 남들 사는 것의 반도 채 못 채우고 이런 식으로 떠날 거라면 차라리 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도록 그를 놓아주는 게 맞지 않았을까. 모르긴 해도 그때 그를 보냈더라면 우리의 관계 또한 거기서 끝났을 것이고 그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아무도 자신을 붙들고 늘어지지 않는 타국의 땅에서 실컷 자유롭게 살았을 테다. 이왕 사람의 수명이 정해진 것이라면 그 짧은 시간 동안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그를 놓아주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역사에 if는 없다. 역사뿐만 아니라, 사소한 개인의 일상에도 if는 없다. 이제 와서 내가 이런 후회를 해 본들 그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심지어 그가 떠나버리기까지 한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나는 자꾸만 그런 생각을 한다. 처음부터 이만큼이었다면, 내 곁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닌 거였다면 차라리 그때 그를 놓아줬어야 했던 게 아닌가 하고.


아무리 빨리 해도 결국 늦는 것. 그게 후회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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