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as time goes by

-129

by 문득

7월 초쯤이었던가. 입만 열면 날씨 정말 미쳤구나 소리가 절로 나오던 때가 있었다. 이제 겨우 여름의 초입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더워서 또 올여름은 어떻게 보낼까 하고, 그 가슴이 스산한 와중에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더위였다. 덕분에 나는 혼자 남은 주제에 에어컨은 무슨 놈의 에어컨이냐던 당초의 생각을 접고 '날씨가 이렇게까지 더우니까' 하는 핑계로 에어컨을 틀어놓고 편하게 여름을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나는 선풍기를 끄기 위해 새벽에 잠에서 깼다. 안 깨지 않고 자기 위해서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된 지는 며칠이 지났고, 조금 후덥지근한 기가 남아 있어 틀어놓았던 선풍기의 바람마저 거슬리는 날씨였던 모양이다.


예전에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바닷물에서 해수욕을 할 수 있는 건 딱 8월 15일까지라고. 그때가 넘어가면 귀신같이 물이 차가워져서 해수욕을 하기 어렵게 된다고. 그땐 그 말이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 얼어 죽는다'는 말 비슷한 일종의 속담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를 조금 먹은 지금은 그게 일종의 '섭리'에 관한 말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올여름이 이대로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의 계절은 봄이 한 달, 가을이 한 달, 나머지 열 달을 반반 나눠 반은 여름이고 반은 겨울이니까. 넉넉잡아 9월 내내 후덥지근한 날씨는 나를 괴롭힐 테고 나는 외출을 할 때마다 마스크 속 콧잔등으로 배어오르는 땀 때문에 짜증을 내야 하겠지. 그러나 7월 초의 그 숨넘어갈 듯한 더위는 이제 웬만큼 지나간 게 아닐까 하는 다소 성급한 생각을 오늘 아침에 잠시 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절감한다.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것을.


그가 떠난 다음날부터 하루하루 세기 시작한 날짜는 오늘로 133일이 되었다. 내 마음은 아직도 지나간 4월 8일 그날에 붙들려 있는데 시간은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를 짐짓 내버려 두고 저만치 가버리는 매정한 엄마처럼 훌쩍 멀어지고 있다.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냐고 힐책하듯이. 네가 아무리 떼를 써도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지나간 네 시간들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꾸짖듯이.


책상 위에 놓인 그의 사진 액자를 본다. 내가 이 사람을 못 보고 산 것이 벌써 넉 달하고도 반이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벽에 걸린 달력이, 핸드폰 액정의 시계가, 그때 피었던 꽃들이 다 지고 숨일 턱턱 막히게 하던 더위가 한 풀 죽은 날씨가 시간이 그만큼 지난 게 맞다고 말해준다. 이렇게 어영부영, 창 밖에는 단풍이 지고 찬 바람이 불 테고, 언젠가는 첫눈이 내리고 에어컨 대신 보일러를 껴안고 살아야 하는 계절이 돌아오겠지. 나는 그렇게, 그가 없는 시간들을 한 계절씩 살아내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난 상처에도 종류가 있다면 요즘 내 마음에 난 상처는 엉켜 았던 무언가를 강제로 뜯어낸 열상(裂傷)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상처 부위가 너무 넓어서 드레싱도 힘들고 반창고 따위로는 가리는 것조차도 어림없는 그런 종류의 상처 말이다. 그런 내 마음에도 언젠가 묵묵히 흐르는 지금의 이 시간들이 딱지로, 굳은살로 앉는 그런 날이 올까. 지금으로서는 아주 요원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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