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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29. 2022

그런 걸 해도 될까

-199

브런치 작가 신청이 통과된 후로 반년 정도가 지났다. 그 사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 편씩의 글을 써 왔다. 끈기도 없고 꾸준하지도 못한 내가 이뤄낸 몇 안 되는 개가 중의 하나인 셈이다.


브런치 또한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 크고 번화한 곳도 있을 것이고 변두리 골방 같은 호젓한 곳도 있을 것이다. 내 브런치는 단연 후자다. 아주 가끔 글이 포털의 메인이라든지에 걸리는 바람에 하루에만 수천 명이 찾아오는 날도 몇 번인가 있었지만 대개 내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의 평균적인 조회수는 백이 조금 넘는 정도이고 가끔 청승을 좀 과하게 떨었다 싶은 날은 50 남짓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 크게 마음을 써 본 적은 없다. 이 브런치의 글들은 그야말로 내가 그런 일을 겪고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의 확인 외에는 별다른 기능도 효험도 없는, 본질적으로 그냥 나 혼자만의 모놀로그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브런치에 몇 달 전부터 브런치북 공모전 배너가 떴다. 내게는 한동안 남의 일이었다. 출간을 해 본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식의 글들로는 아니었고, '뭐 좋은 일이라고' 이런 글로 출판씩에나 도전하겠는가.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안 그래도 브런치에는 재치 있고 글 잘 쓰고 다양한 분야에 아는 것 많은 분들이 잔뜩 계시니까 그런 분들 중 누군가가 그 기회를 가져가시겠지.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러던 내 마음이 흔들린 것은 얼마 전 있었던 다음카카오의 화재 사건으로 하루 이상 브런치 접속이 안 되었을 때였다. 좀 더 정확히는 그 사건으로 인해 브런치북의 접수 일정이 일주일 뒤로 밀렸다는 공지가 뜬 후부터였다. 원래 내 성격은 약간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딱 부러지게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결정하지 못하다가 어영부영 미적대는 사이 시간이 지나가면 에이, 기한이 끝나버렸네 어쩔 수 없지 하는 식으로 슬그머니, 마치 그 포기가 내 의지가 아닌 양 놓아버리는 그런 타입이다. 그래서 이번 브런치북 공모전 또한 대충 그런 느낌으로, 어영부영하던 사이 접수 기한이 지나버렸다는 식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소위 '딱 걸린' 느낌이었다. 늘어난 그 일주일의 시간 동안 나는 조금 더 치열하게 고민을 해 보았다.


그리고 결정했다. 시도라도 해 보기로.


사람은 마음에 없는 일을 글로 쓸 수 없는 존재이다. 나 또한 그간 숱한 방향에서의 사랑과 이별과 홀로서기에 관한 자잘한 글들을 써 왔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뭘 알아서 그런 것들을 감히 글에 썼는지 스스로 실소하게 될 따름이다. 아마도 내게는, 이런 일을 겪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말하는 것은 아마도 내게 주어진 하나의 의무가 아닐까.


그래서 발행된 200편의 글(그나마 한 편은 지난번 브런치 서버가 다운되면서 롤백돼 버려 날아갔지만) 가운데 30편 정도의 글이 매거진에서 빠지게 되었다는 말씀을 올린다. 상기한 대로 내 글은 그냥 이런 슬픈 일을 겪은 사람이 안 죽고 용케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 외에 어떤 용도도 없는 글이지만, 그래도 읽어주시는 88분의 구독자님께 미리 사과와 양해를 구하는 말씀을 올린다. 딴에는 많이 고민했고, 내 글 따위로 저런 걸 해도 될까를 생각했고, 그래도 한 번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변명의 말씀과 함께.


결국 며칠 전부터 애를 먹이던 모니터는 오늘 아침에 장렬하게 뻗어버렸고 나는 그의 PC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도대체 왜 다들 이런 식으로 돌아가며 나를 애먹이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해 본다. 그는 아마 웃으며 그렇게 대답할 것 같다. 사는 게 원래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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