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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23. 2022

정체기가 왔다

-164

살 정말 많이 빠졌다 심지어는 예뻐졌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는 말은 나를 오랜만에 보는 동시에 내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요즘 꼭 한 번씩 듣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애매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어차피 그네들도 내게서 특별한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닐 것이기에.


그가 갑자기 떠난 후 지난 다섯 달 동안 나는 체중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그간 입던 옷들은 이제 전부 커서 입지 못하게 되어서, 간단한 바지며 맨투맨 같은 것들이 싸게 나온 것을 볼 때마다 인터넷으로 하나씩 사모으고 있다. 심지어는 그렇게 새로 산 옷들 중에서도 꽤나 헐렁해진 옷들이 또 생겼다. 전에는 몸에 지나치게 붙어서 입지 못하던 옷들이 이제는 꽤 루즈하게 맞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내가 살이 빠지긴 많이 빠졌구나 하는 사실을 절감한다. 살을 빼기 위해 무슨 거창한 식단을 하거나 루틴을 세워 운동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저녁에 먹어 버릇하던 간식을 끊는 것만으로도 사람 몸은 이렇게 변하기도 하는구나 하고.


그리고 그렇게 끝을 모르고 쭉쭉 빠질 것 같던 내 체중은 이번 달 들어 갑자기 제자리걸음 중이다.


딱히 내 생활이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진 않다. 내 생활이 이렇게 바뀐 이유는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도저히 그러고는 살 수가 없어서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없는 저녁에 혼자 먹으려고 빵을 사다 재 놓는 짓을 할 수 없다. 나는 그가 없는 새벽에 혼자 보려고 영화나 드라마를 결제해서 밤을 새는 짓을 할 수 없다. 지금의 내 생활은 그런 결과이기 때문에, 딱히 '해이해져서' 정체기가 온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예전에는 숨만 쉬어도 날마다 수백 그램씩 빠지던 체중이 이제는 의 변동이 없거나, 심지어 몇백 그램 늘어있는 수준으로 변했다는 정도다.


인터넷에는 다이어트 중인데 정체기가 찾아와 너무나 우울하다는 글이 넘쳐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살은 빠지기는커녕 도로 조금 찌기까지 했고, 그런데도 저녁이 되면 눈치 없이 는 고파서 뭐라도 집어먹고 나면 말할 수 없는 자괴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는 자아비판의 글들과, 그럴 때는 뭐를 먹으면 좋고 어떤 식으로 대처하면 좋다는 수많은 꿀팁들. 나는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나는 체중의 앞자리를 바꾸기 위해 딱히 뭔가를 '노력'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실망감도 덜한(아주 없지는 않다고는 해도) 편이다.


여러 다이어트 고수님들의 글에 의하면 정체기란 몸이 살이 빠진 상태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160cm에 48kg이 나가야 보기에 좋다는 건 인간의 사정일 뿐, 몸은 어쨌든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서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을 대비하려고 하는 것이고, 그 비축된 열량이 떨어져 나가면 몸은 그 상태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전을 조절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몸무게가 정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그래서 타개책은 그냥, 하던 대로 운동하고 먹던 대로 먹으면서 몸의 적응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고 한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참,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듣게 되는 말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고.


기다리는 것만이 답이라면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이제 내게는 시간이 아주 많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다리는 것밖에 없으니까. 소위 '정상체중'을 목전에 두고 이렇게 정체기가 와버린 건 조금 약 오르긴 하지만. 너 그렇게 살이 많이 빠져서 나중에 그 사람이 못 알아보면 어떡하냐는 농담을 하시는 분이 계셨다. 그러게. 거기까진 미처 생각을 못해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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