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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24. 2022

올해가 백일 남았대요

-165

그거 아세요? 오늘부터 하루에 만 원씩 모으면 올해 12월 31일에는 100만 원이 된대요.

어제 가끔 가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온 걸 봤다.


저 짤막한 글이 눈을 끌었던 건 백만 원이라는 돈의 액수가 아니었다. '100'이라는 숫자와, 12월 31일이라는 날짜였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하루에 만 원씩 모으면 올해 연말엔 100만 원이 된다는 말은 결국 올해가 딱 백일 남았다는 말인 것이다. 뭐래. 순간 당황해서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대충 날짜를 세어 보았다. 남은 달이 10, 11, 12월 석 달이고 큰 달이 두 달 끼어 있으니까 8을 빼면. 엄마야. 진짠가 보네. 나는 잠시 멍청해진 기분으로 그 짤막한 글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뭘 했다고 올해가 백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까.


시간의 흐름과, 그 흐름을 자각하는 순간의 씁쓸함, 혹은 두려움 같은 감정들은 이미 몇 번이나 이런저런 식으로 이 브런치에 쓴 적이 있었다. 그건 사실 요즘 들어 나를 가장 착잡하게 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아무것도 인정하지 못했는데 시간은 묵묵히 흘러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영영 그가 잠시 집을 떠나고 나 혼자 집을 보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이를테면 정직원이 잠시 휴직한 사이 그 자리를 메꾸러 들어간 계약직 직원 같은 기분으로 남은 나날을 살게 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 날이 서늘해지면서 부쩍 생각이 많아진 것은 그런 생각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 글을 본 순간 느낀 것은 그런 감정조차도 아닌, 그저 순수한 당혹감이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시간이 몇 개월이나 흘러버린 그런 기분이라고 하면 비슷할까. 성급하게 이미 4분의 3이 지나가버린 올해를 후루룩 돌이켜 보았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늘 그랬지만, 올해는 더 심했다. 올해 내가 한 것이라고는 갑작스레 그를 잃고 휘청거리는 나를 어떻게든 다잡으려고 온갖 짓을 다 해 가며 발버둥 친 것뿐이었다. 한동안 내게는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모두가 일상이 아닌 하나의 과업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지극히 당연하던, 숨을 쉬는 것과 같은 레벨이던 그런 일들을 해내기 위해 나는 발가락 끝에서부터 내가 가진 모든 힘과 용기를 다 짜내어야 했다. 그러느라고 다른 뭔가를 시도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남은 백 일이라고 해서 뭐 크게 다를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까 나의 2022년은 그냥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 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해로 그렇게 남게 될 것 같다.


오빠. 올해가 백일 남았대. 일단 무조건 그렇게 말해 본다. 시간은 참 이렇게, 시키지 않아도 잘도 가는구나. 말 끝에 제풀에 씁쓸해져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사라진 현실과, 그런데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는 나와,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묵묵히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과, 지금 이 순간도 하루하루 뒤로 밀려나고 있을 이 순간 같은 것들이 머릿속을 한참이나 어지럽게 맴돌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그가 없는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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