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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25. 2022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166

늘 하는 꽃 손질이지만 토요일 아침의 경우는 조금 더 신경이 쓰인다. 오늘 내리는 판단에 따라, 자칫하면 시든 꽃을 꽃병에 꽂아둔 채로 이틀을 지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버틸만하다며 생기를 잃기 시작한 꽃도 꾸역꾸역 꽃병에 꽂아놓는 나지만 토요일에는 조금 엄격해진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앞에 사다 놓은 노란색 골든트렌셋 장미가 봉오리째로 바싹 말라가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고, 나는 이 꽂을 더는 그의 책상에 놓아둘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장님은 주문이 들어온 화환을 만드느라 정신없이 바쁜 상태였다. 조문용이 두 개, 축하용이 세 개 정도 되는 모양이었다. 출력한 전표를 붙여 놓은 리본들이 가게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그래도 사장님은 나를 위해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케이스 옆까지 다가와서 내가 꽃 고르는 것을 도와주셨다.


어제는 장미가 많았다. 아주 색깔 별로 다 있는 것 같았다. 순백색, 크림색, 핑크색과 섞인 것, 샐먼 핑크, 연한 핑크, 진한 핑크, 노란색, 빨간색, 검붉은 색 등등 온갖 종류의 장미가 있었다. 그러나 어제는 장미는 구매 대상에서 제외였고,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가지 되지 않았다. 2주쯤 전에 한번 샀던 공작초도 탈락. 그 앞쯤에 한번 사서 꽤나 오래 꽂아두었던 왁스 플라워도 탈락. 옥시페탈룸 블루스타는 벌써 다시 살 때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 탈락.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나는 구석에 꽂혀 있는 소담한 자주색 국화 비슷한 꽃으로 눈을 돌렸다. 이것도 공작초인가요? 아, 그거 과꽃이에요. 아아. 탄성이 터졌다. 과꽃이라. 어려서 배운 동요에 나오는 그 과꽃이, 이렇게 생긴 꽃이구나. 나는 그쯤에서 고민을 멈추고 과꽃을 한 다발 사 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줄기에서 뻗어나간 꽃대들을 일일이 잘라서 나누었다. 국화과 꽃들 특유의 무성한 이파리도 윗부분의 몇 장씩만 남겨놓고 다 떼어냈다. 그렇게 손질을 하면서 가만히 살펴보니, 이렇게나 다르게 생겼는데 왜 이 꽃을 처음 본 순간 소국이나 공작초 종류라고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뭐든 아는 만큼 보이고 알아야 면장을 하는 거지. 그렇게 근 20분이나 걸려서 꽃을 손질하고 꽃병에 꽂았다. 마침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지는 날씨에 딱 어울리는 꽃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오빠. 이게 그 과꽃이래.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하는 노래 있잖아. 그 과꽃. 오빠도 처음 보지. 오빠나 나나 도시촌놈이 돼가지고선. 꽃이 기울어진 방향을 그의 의자 쪽으로 돌려서, 꽃이 잘 보이게 놓고 한참이나 그런 장광설을 떠들었다. 그간의 빈약한 데이터에 의하면 공작초나 소국이 생각보다 수명이 길지 않은 느낌이 있던데 이 녀석은 어떨지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 그건 또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한다.


어린 시절 배운 동요에 나오는, 과꽃을 좋아해 과꽃이 피면 꽃밭에서 살다시피 했다던 소년의 누나. 시집간 지 3년이나 지났는데 소식 한 장 없다던 그 누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친정에 기별 한 장 낼 수 없을 정도로 시집살이가 혹독했던 걸까. 가을이 오고 과꽃이 피면 동생이 누나를 생각했듯 누나도 동생을 생각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내가 그 노래의 가사를 너무나 정확하게 다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놀랐다.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노래라서. 그 꽃에 나오는 꽃이라서. 이 소박한 꽃이, 사다가 꽂아놓고 나니 이렇게나 마음이 흡족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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