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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27. 2022

옛날에 내가 죽은 날

-168

간단한 일정을 체크해 놓는 포털의 캘린더 페이지의 오늘 날짜에는 저런 코멘트가 달려 있다. 물론 저 문구 자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엣날에 내가 죽은 집'의 변형이긴 하다.


꼭 3년 전 오늘이었다. 나는 달갑지 않은 미팅 때문에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미팅 시간은 아침 10시였고 최소한 집에서 여덟 시 반쯤에는 나서야 했다. 지금이야 여덟 시 반이면 아침에 할 일을 죄다 마무리하고 브런치에 글까지 쓰고 나서 아홉 시에 본격적으로 그날의 일거리를 시작하기 전 잠깐의 망중한을 즐길 시간이지만 그 무렵의 내 기상시간은 어김없이 아홉 시였고, 그래서 여덟 시 반에 집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일곱 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래서 나는 짜증이 잔뜩 나 있었다.


그는 그런 나를 위해 소고기 뭇국을 끓여 아침을 챙겨 주었다.


그날의 소고기 뭇국이 아직도 기억난다. 윗동네 식의 맑은 국이 아니라, 경상도 식으로 고춧가루와 소고기를 함께 볶아 끓인 벌겋고 얼큰한 국이었다. 이거 자그마치 한우야. 말없이 엄지 척을 해 보이는 나에게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요즘 수입 소고기도 참 맛있게 잘 나오긴 하는데 그래도 역시 한우는 한우인 것 같아. 그치. 가격 차이가 한 서너 배 나지 않나. 뭐 그런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나는 대충 점심때쯤엔 집에 올 거라고, 그런 인사를 남기고 집을 나섰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내가 정신을 차린 건 그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는 그날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날 미팅을 마친 후 어느 순간부터 만 하루 동안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서 깡그리 사라지고 없다. 그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의 얼굴만이 기억날 뿐이다. 내가 퇴원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넉 달이 꼬박 걸렸다. 그는 편치 않은 몸으로 매일 집과 병원을 오가며 나를 간병하고 돌봤다. 그러느라고, 그때 한참 진행 중이던 자신의 진료는 전부 놓아버렸다. 이젠 괜찮다고, 생전 안 다니던 병원 좀 다니고 약 좀 챙겨 먹었다고 몸이 좀 좋아진 것 같다고. 약도 계속 먹으면 내성 생겨서 안 좋으니까, 또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면 그때 다시 가 보지 뭐. 이런 바보 같은 소리를, 나는 더 바보같이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래서, 지금도 생각한다. 그날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가 자신의 진료를 놓아버리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그날 그런 식으로 내 곁을 그렇게 빨리 떠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아니, 않았을 거라고.


그 일이 있고부터도 이미 3년이나 시간이 지났다. '작년 오늘'에 대해 그가 뭐라고 이야기를 한 건 그다음 해 한 번 정도가 고작이었고 그 다다음 해가 되는 작년부터의 9월 27일은 그냥 그렇게 평범한 1년 중의 어느 하루로 격하되었었다. 그리고 올해도 그랬을 것이었다. 그러나 9월 27일은 다시 부활했다. 내가 그를 아프게 했던 날로. 결국 내가 그를 떠나보내게 만든 날로.


그래서 나는 오늘도 봉안당에 간다. 그의 영전에 용서를 빌러 간다. 당신을 마음 아프게 한 것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당신을 떠나가게 만든 것에 대해서. 이렇게 남아서 눈물을 짜는 것밖에 어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넉 달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던 날, 그는 집에서 내려 온 아메리카노가 든 텀블러를 내밀며 오히려 내게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는 말을 했었다. 결국 당신은 그런 식으로 당신의 목숨과 맞바꿔서 나를 살린 거였느냐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할 것 같다.


한동안 이런 일이 없었는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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