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당신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Sep 28. 2022

무사한 겨울

-169

며칠 새 갑자기 날씨가 서늘해졌느니 하는 소리를 쓰던 게 며칠 전 일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9월 달력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며칠 후면 달 앞에 붙은 숫자는 두 자리가 될 것이고, 시간은 가속도가 붙어 연말까지 일사천리로 내달리게 될 것이다. 서늘하다가 쌀쌀하다로, 쌀쌀하다에서 다시 춥다로 바뀌는 기간은 한 달이 채 되기나 할지 모르겠다. 아 가을이구나 하는 감탄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단풍은 다 떨어지고 없을 테고, 정신을 차려보면 눈 내리고 바람 부는 겨울이 되어 있겠지. 뭐 늘 그래 왔듯이 말이다.


지난달 말에 부지런을 떨어놓은 탓에 이번 달 말에는 굳이 침대 정리를 새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 덮고 자는 차렵이불로도 새벽의 찬 공기를 막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아마 그때 고민해 볼 문제일 것이다. 내가 본격적인 가을맞이를 준비해야 하는 지점은 다른 곳에 있다. 어찌어찌, 수개월간 건사하고 있는 화분들 이야기다. 요즘 들어 어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창문을 열고 화분을 옮겨 놓으려다가 싸늘한 새벽바람에 깜짝 놀라 한 시간쯤 미적거리다가 화분을 창가에 들어다 놓는 일이 잦아지면서 내 심사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얘네들 어떡하지.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건가.


키운 지 각각 다섯 달, 넉 달이 된 두 녀석은 딱 보기에도 겨울을 잘 버텨내게 생긴 녀석들은 아니다. 다육이의 경우는 종류가 하도 많아 그 많은 것들 중에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까지도 잘 모르고 있는데, 이 녀석의 세세한 분류가 무엇이든 일단 덥고 햇빛 많이 나는 동네가 원산지일 것 같다는 확신만은 있다. 무화과의 경우도 비슷한데 이 녀석은 이파리 생긴 모양새부터가 넓적한 것이 도저히 한국의 추운 겨울을 잘 버텨낼 것 같지 않다. 실제로 본격적으로 무화과를 키우시는 분들의 경우는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줄기를 보온재로 싸서 묶는 등의 월동준비를 하시는 것 같고, 그렇게 해도 결국은 겨우내 나무가 죽어버려서 뽑아냈다는 글도 제법 드물지 않게 있었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나는 가벼운 패닉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요 며칠 새, 아침마다 창가로 화분을 옮겨다 놓으며 나는 푸념 아닌 푸념을 한다. 니들 겨울에 어떡하면 좋냐? 그냥 창문 꼭꼭 닫아놓은 실내에 놓아두면 되나? 근데 그러면 볕을 하나도 못 쬐잖아. 그건 싫을 것 같은데? 물은 얼마 만에 한 번씩 주면 되는 거야? 여름보다 조금 더디게 줘야 하나? 야, 그렇게 입 꾹 다물고 있지 말고 대답들 좀 해 봐. 그러나 물론 두 녀석 다 대답은 없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스트라이크라도 하듯이.


수박 겉핥기 하듯 인터넷을 좀 찾아본 바로는 물은 지금까지와 비슷하게, 다육이는 한 달에 한 번 무화과는 4, 5일에 한 번 주면 되고 대신 온도에는 신경을 써줘야 한다고 한다. 노지에서 키우는 것도 아닌 화분에 심긴 무화과에 보온재를 두르는 것까지 할 필요는 없고 영하에 방치하는 것 정도가 아니면 기본적인 난방이 되고 찬 바람이 직접 닿지 않는 실내에 두는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긴 하던데 속 편하게 그 말을 들어도 될까. 두 녀석 다 내게 온 시기 자체가 각별해서 나는 이 녀석들이 나의 부주의와 무지함으로 인해 죽어서 내 곁을 떠나는 일만은 없기를 바란다. 원래 내 성격이라면 에이 뭐 별 거 없네 하고 머릿속에서 치워버렸을 화분의 겨울나기가 아침마다 찜찜하게 머릿속에 맴도는 건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두 녀석 다 건강하게, 내 곁에서 살아남아 내년 봄을 맞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내게 그만큼의 지혜와 배려가 허락되기를. 아, 그러고 보니 이런 일에 조언을 구할만한 스페셜리스트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 분 계시지 않던가. 과꽃이 시들어 다음 꽃을 사러 갈 때는 꼭 잊지 말고 꽃집 사장님께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녀석들과 나의 무사한 겨울을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옛날에 내가 죽은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