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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22. 2022

타인의 이별

-163

이번 주 상담을 받으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의 일이다. 그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 자주 가던 편의점에 커피라도 하나 살까 하고 갔다. 며칠 새 날씨가 귀신같이 쌀쌀해졌다는 둥 하는, 단골 가게 사장님과 할법한 잡담을 조금 나누고 돌아서서 나가려는데 사장님이 불쑥 그렇게 물었다.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졌어요? 진짜 많이 빠졌네. 도대체 뭘 해서 뺐어요? 나도 좀 알려줘 봐요.


순간 내 얼굴에 어떤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을지까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어떤 얼굴이었든 수 초 이상을 갔을 리는 없다. 나는 얼른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그냥 밤에 맨날 간식 먹던 걸 좀 안 먹었더니 이렇게 빠지더라고, 그런 대답을 했다. 일 때문에 밤늦게까지 깨 있는데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출출해져서 이것저것 막 막게 되거든요. 그거 좀 독하게 마음먹고 끊었더니 빠졌어요. 그런 아주 무난한 대답을.


그리고 그 짤막한 대화는 상담실까지 가는 내내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편의점에 가서 장을 보는 사람은 없다. 편의점에 가서 사는 물건은 대개가 정해져 있다. 담배나 쓰레기봉투 같은, 다른 곳에 가도 더 싼 가격에 팔지 않는 물건들이다. 그와 나도 그랬다. 그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주로 담배를 사러, 가끔 생각지 못하게 늦잠을 자버렸거나 밥해 먹기가 귀찮거나 외출하기 전 간단하게 먹을 뭔가가 필요할 때 도시락이나 샌드위치를 사러 갔었다. 그 외에도 혹시 새로 나온 커피 음료가 있는지, 원 플러스 원 행사를 하는 제품은 뭐가 있는지를 구경하러, 새벽 무렵 갑작스레 입이 궁금할 때 먹을 뭔가를 사러 종종 들렀었다.


그가 담배를 끊으면서부터 그는 집에 있고 나 혼자서만 편의점에 가는 일이 잦아지긴 했었다. 그러나 거의 반년 가까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그에 대해, 편의점 사장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문득 그런 것이 궁금해졌다. 사실 언젠가 사장님이 왜 남편 분은 요즘 통 안 보이냐는 질문을 불시에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방에 발령이 나서 갔다는 나름의 핑곗거리를 준비해 놓긴 했었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마음을 먹었던 건, 그 분과 나의 거리가 그런 슬픔까지 공유하자고 달려들 만큼의 막역한 사이는 아니라는 내 나름의 거리재기였다. 그러나 편의점 사장님은 그가 떠난 지 반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그의 부재에 대해 묻거나 알은체를 하지 않고 있다. 그건 친절일까 배려일까 혹은 무관심일까.


그러나 문득 생각했다. 아 어쩌면. 차마 이런 일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둘이 헤어졌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계시는 게 아닐까 하고. 사람은 의외로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니까. 이혼이든, 그게 아니라면 그보다 조금 간소한 형태의 결별이든, 둘이 그냥 헤어졌나 보다 하고, 그래서 둘이 더 이상 같이 살지 않는가 보다 하고, 그렇게 적당히 알아서 납득해 주고 계시는 게 아닐까. 그런 거라면 굳이 단골 관리를 하겠답시고 안부를 묻는 것은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아예 이사를 간 것도 아닌데 단골이던 사람이 반년 가까이 발을 끊었는데도 아무 언급이 없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앞뒤가 맞았다. 그리고 알 수 없이 씁쓸해지는 입맛을 다시며 한참 동안이나 차창 밖의 풍경만을 바라보았다.


문득 생각한다. 쉽고도 단순하게, 그냥 그렇게 됐어 하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며 웃어넘기던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그들에게도 다 제각기 나 같은 사연들이 있었던 걸까. 구구절절 말하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프거나, 혹은 내게까지 그 아픔을 떠안기기 싫어서 혼자서만 삼킨 많은 순간들이 있었던 걸까.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견딜 수 없는 매일매일이 고작 '타인의 이별' 정도로 퉁쳐져 넘어가고 있는 지금에서야.


사는 거 참 쉽지 않다. 이 나이를 먹고도 이런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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