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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13. 2022

오늘은 77점

-154

내게는 한동안 아침에 일어나 그날의 운세를 보던 어플이 있었다. 몇 달을 두고 지켜본 결과 몇 가지의 고정된 '템플릿'을 가지고 두루뭉술하게 적당히 돌려서 결괏값을 내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그건 내 나름의 소소한 재미였다. 차 조심을 하라면 차 조심을 하고, 사람 조심을 하라면 사람 조심을 하고, 가끔 운수의 평점이 90점이 넘어가는 날이면 반신반의하며 로또를 한 장 사보기도 했었다. 아무도 결과를 보장해주지 않는 그 어플은 그렇고 그런 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게 하나의 작은 나침반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매일 아침 오늘의 운세부터 들여다보던 그 어플을, 나는 그날 이후 보지 않고 있다.


그날 내 운수는 85점이었다. 아주 베스트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만하면 꽤 일진이 좋은 축에 드는 그런 날이었다. 어려웠던 일들이 알아서 술술 풀리는 날이라는, 그런 말까지 적혀 있었다. 그를 보내 놓고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 불쑥 어플의 결과를 확인해 보고 왈칵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그날 그런 일이 생긴 것이 그 어플의 탓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나는 뼈저리게 깨달아버렸다.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걸. 한낱 운세 어플 따위로 들여다볼 수 없다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고, 그간도 재미로 본다고 스스로 생각하던 사실인데도 이런 식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뼈아팠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아침 그 어플을 보고, 차 조심을 하라면 차를 조심하고 사람 조심을 하라면 사람을 조심하고 가끔 운수의 평점이 90점을 넘는 날이면 로또를 사보는 그런 짓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27년 전 묵은 우리의 기념일 중의 하루다.


한동안 눌러보지 않던 운세 어플을 아침에 문득 열어보았다. 오늘의 내 점수는 77점이라고 한다. 인생이 막막하고 되는 일 하나 없이 좌충우돌할 일진이라는, 썩 유쾌하지 않은 말이 적혀 있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오늘 며칠간 골머리를 썩이게 하던 일로 담판을 짓는 전화 통화를 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추가로 더 머리 아픈 일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아침에 봉안당에 다녀온 후 오늘까지 맞춰야 하는 마감도 처리해야 한다. 명절 전에 인사를 차려야 할 분에게 보내 놓은 선물 하나가 결국 명절 안에 배송되지 못한 문제로 쇼핑몰의 고객센터와 한바탕 언성을 높일 일도 예정되어 있다. 이런 하루이니, 77점이면 오히려 후한 편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인생에 존재하는 행운과 불행의 총량이 있다면 그를 잃어버린 것만으로 앞으로 내 인생에 슬프고 힘든 일이라고는 일체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그건 그냥 내 생각인 모양이고, 나의 행운과 불행을 재는 존재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이런 사나운 일진이라니.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사는 거니까. 인생이 온통 서글프고 씁쓸하고 공허해도 어쩔 수 없다. 어쨌든 이를 악물고, 77점짜리 하루를 살아내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건 내가 그를 따라가지 않고 어쨌든 살아가기로 결심한 순간에 결정된 일일 테니까.


대신 오늘 봉안당에 가서는 실컷 우는 소리나 하고 와야겠다. 오빠 나 사는 거 왜 이렇게 피곤하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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