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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17. 2022

날이 밝는 순간

-158

날이 짧아져 가고 있다. 요즘 부쩍 그런 실감을 한다. 얼마 전까지는 한참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시계를 보고 벌써 여덟 시가 다 돼가네 하고 깜짝 놀라 창가에 내다 놓은 화분을 들여놓으러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었다. 열어놓은 창문 밖이 아직 너무나 훤해서 저녁 여덟 시라는 나의 시간관념과 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일곱 시쯤이 되면 벌써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하긴 하지가 석 달쯤 전에 지나갔으니 동지가 석 달쯤 남았다는 말이 되겠고, 한 시간쯤 날이 짧아지는 것도 그럼직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날이 짧아졌다는 실감을 하게 되는 건 저녁보다는 아침 쪽이다. 여섯 시로 기상 시간을 정해놓고도 그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하고 다섯 시 반 조금 넘어 잠이 깨곤 하던 습관은 창문 밖이 꽤나 일찍부터 훤해지기 때문에 그랬던 것도 있었다. 그래서 여섯 시가 채 안되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도 내가 꽤 일찍 일어났구나 하는 실감은 별로 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늘 깨던 그 시간에 눈을 떠 보면 바깥은 아직 어둑어둑하다. 그래서 단박 이불을 걷어치우고 일어날 것인지 조금 더 뒹굴거리다가 일어날 것인지를 맑지 않은 머리로 고민하게 된다. 그런 차이가 있다. 그런 경우 내 선택은 대개 전자다. 이미 잠이 깨버린 정신으로 침대 위를 뒹굴거려봐야, 기껏해야 10분 남짓 남은 기상이 더 괴로워질 뿐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는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꽃병에 물을 갈거나 간밤에 물을 따라놓은 컵을 씻는 것 정도의 행동은 가능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저도 모르게 더듬더듬 벽을 더듬어 스위치부터 찾게 되었다. 눈을 비비며 창문을 열면 어둠이 덜 가신 바깥으로 조금 전 내가 켠 불빛이 새아나가 스며드는 것이 보인다. 조용한 바깥을 내다보면서, 나는 잠시 아주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진 것 같다는 고립감에 사로잡힌다. 아마도 그가 있을 때는 바깥이 이렇게 컴컴할 때 일어나는 일이 별로 없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꽃병에 물을 갈고, 간밤에 물을 따라 마신 컵을 씻어놓고, 침대를 정리한다. 그러느라고 잠시 부산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그 30분 사이에 날은 거짓말처럼 밝아져 있다. 어둑어둑하게 깔려있던 어둠은 그새 자취를 감추고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하루를 시작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을 만큼 말끔해진 아침이 창 밖에 펼쳐져 있다. 불과 30분 사이에 세계가 그렇게 개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매일 아침 겪는 일이면서도 또 매일 아침마다 그 변화무쌍함에 놀라곤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경계'를. 그 '순간'을. 밤이 오는 순간. 날이 밝는 순간. 여름이 끝나는 순간. 가을이 오는 순간. 그런 것들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의 끝은 그날 새벽 그가 잠들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나는 잠시 서러워진다. 그 짧은 시간의 경계를 두고, 저 편에는 그가 있었는데 한 발만 넘어온 이 편에 그는 없다. 그 허망함에 가슴이 먹먹해져, 나는 가끔 분주한 아침에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때가 있다.


한 올의 명주실을 아주 잘 드는 칼로 단칼에 자를 때, 그 실이 끊어지는 순간이 64 찰나라고 한다. 그러니 그가 떠나간 그날 밤은 수 만, 혹은 수십만 찰나쯤이나 될 것이고, 그 순간을 통째로 놓쳐버린 나는 그 사실에 이렇게까지 안타까워할 자격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매일 아침 문득 밝아있는 창 밖을 바라보다가, 그 찰나의 순간 내 손을 놓고 돌아서버린 그를 떠올리며 망연해진다. 뭐, 모르는 일이지. 우리가 다시 만나는 순간도,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올지도. 내가 미처 예상하지도 못한 타이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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