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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08. 2022

그대 곁에 없으니 별래무양하시온지

-179

이번 주는 기상 시간이 영 들쭉날쭉해서, 3일쯤은 30분 늦게 잠에서 깼고 오늘은 또 그를 벌충이라도 하자는 것인지 한 시간이나 일찍 잠에서 깼다. 창밖은 아직도 어슴푸레했고 이불을 덮고 있어도 공기가 쌀쌀하다는 것이 느껴져, 나는 한 시간 남짓 이불을 걷어치우고 일어나지 못하고 이불속에 파묻힌 채 선잠과 어렴풋한 각성 사이를 30분 남짓 헤맸다. 오늘 아침에 해야 할 일을 마쳐놓고 나갔다 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으면 아마 일찍 깨어버린 그 한 시간 남짓을 그런 식으로 다 낭비했을지도 모른다.


창문을 여니 시커먼 새벽 공기가 훅 들이쳤다. 잘못 일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열린 창문으로 들이치는 쌀쌀한(이젠 더 이상 '서늘한'도 아니었다) 바람에 엇 추워, 하는 감탄사를 내뱉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온도가 1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도 한낮의 온도가 30도 가까이 육박해서 여름 이불을 싸 넣느니 마느니 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고 며칠 전까지만 해더라도 방 한 구석에 선풍기를 놓아두었었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창 밖의 공기가 너무 차가워 화분을 당장 창가에 들어다 놓을 엄두가 나지 않아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침대를 정리하고, 꽃병의 물을 갈고, 이런저런 소소한 정리를 하느라 30분 정도를 들이고 창밖을 보니 저 편 너머부터 날이 새고 있었다. 마치 어둠에 금이 가고 그 금을 통해 용암이 터져 나오듯, 뜨기 시작하는 해가 조금씩 햇살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밝아오기 시작하는 오늘 하루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내 짧은 인생에만도 얼추 만 오륙천 번가량이나 반복되어왔을 것이면서도 딱히 의미를 두고 바라본 적은 그다지 많지 않은 그 순간을.


해가 뜨는 순간은 꽃이 피고 지는 순간만큼이나 짧고, 순식간에 지나간다. 어둠이 빛으로, 새벽이 아침으로 바뀌는 그 순간은 길어도 5분 이상을 넘지 않는다. 순식간에 날은 새고, 컴컴했던 하늘은 마치 저 먼 곳에서 누군가가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불이라도 켠 듯 환하게 밝아졌다. 물론 날이 밝아져도 공기는 여전히 쌀쌀했고, 나는 과연  화분을 창가에 가져다 두어도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에 몇 분의 시간을 써야만 했다.


그 또한 어딘가에서 이 여명을 보고 있을까. 이 이른 아침의 때아닌 쌀쌀함에 깜짝 놀라 엇 추워, 하는 말을 내뱉고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씁쓸해하고 있을까. 그곳은 덥지도 춥지도 않다지만,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워서 두고 온 사람 따위 다 잊어버리는 그런 곳이라지만,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입술이 터져 피가 나진 않는지, 이맘 때면 잘 걸리던 목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있진 않은지,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그런 것들이 하릴없이 궁금하다.


오늘 봉안당에 가는 길에는 흘러간 옛 노래나 들으면서, 그 가사나 곱씹으며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은 사람은 두고 떠난 사람의 마음을 모르겠지만 떠난 사람 역시도 남은 사람의 마음 같은 건 알 리가 없다는 생각도 한다. 알면 그렇게, 잘 있으라는 말 한마디 남겨주지 않고 훌쩍 가버리진 않았을 테지.


不在你身旁 別來無恙 그대 곁에 없으니 별래무양하시온지
才知道相思也有重量  비로소 그리움에 무게 있음을 알았네
-육의陆毅《명월광明月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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