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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10. 2022

온기가 그립다고

-181

평생을 함께할 거라 믿었던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것은 누구에게든 언제든 힘들고 슬픈 일일 것이다. 다만 나의 경우에는 그 이별이 예상외로 일렀고, 또한 갑작스러웠다는 점에 조금 더 가중치가 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상담사 선생님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남편이 회사 일로 출장을 갔다가 출장지에서 심정지로 사망한 경우였다. 그 짤막한 한 마디를 듣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아아 하는 탄성을 내뱉고는 울컥 눈물을 쏟았다. 아마도 그분은 손수 남편이 출장 가서 쓸 물건들과 갈아입을 옷 등등을 챙겨서 집을 나서는 남편을 배웅했을 테고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보낸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은 그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쩌면 그 부부의 마지막 인사는 그리 다정하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던 끝에 서로가 서로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하고, 팩 하니 토라져 남편이 나가는 뒷모습을 한 번 쳐다보지도 않지는 않았을까. 그까짓 것,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올 때쯤에는 알아서 풀어져 있을 것만을 믿고서. 거기까지 순식간에 생각이 달려 버려서, 나는 그 딱 한 문장을 듣고도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이렇듯 갑작스러운 이별이 내게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분은 오래 슬퍼하지도 못하셨어요. 애가 있었거든요.


내가 두 번째로 눈물을 쏟은 건 이 지점이었다.


이렇게, 이 풍진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외로움에 신음하는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아이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나 하나를 책임지고 버텨내는 것만도 힘겨운 이 와중에 지금부터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할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얼마나 큰 짐일 것인가 하고. 요즘 들어 조금은 나아졌다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널을 뛰는 지금의 내 상태로, 아이가 있다면 나는 과연 그 아이에게 얼마나 좋은 엄마일 것인가. 나는 아이에게 아빠의 부재를 얼마만큼 잘, 거짓되지 않으면서도 상처되지 않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그를 잃은 만큼 아이도 아빠를 잃은 슬픔을 머금고 있는 상태일 텐데, 나 하나의 슬픔과 외로움조차 감당하지 못해 가끔은 엇나가는 내가 너무나 섬세하고 부드러울 아이의 마음을 얼마나 보살피고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나는 과연 그 아이에게 2차 가해자가 아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사람일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그는 여기까지도 내다보고 아이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크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혼자 남고 난 후로는 가끔 이 공간이 내게 버겁다는 생각을 한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쌀쌀해지고부터는 더욱 자주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람 하나가 있다가 빠져나가버린 자리는 그렇게나 허하고 서늘하다. 사고를 당해 내가 집에 없었던 4개월 간, 그는 어쩌다 하루 집에 가는 날이면 집안에서도 플리스 점퍼를 입고 지퍼를 목 끝까지 채우고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알 수 없는 추위에 몸이 떨려와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지금의 이 서늘함(조만간 추움 정도로 바뀔 것 같지만)은, 보일러나 난방으로 해결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온기가 있다가 사라져 버린 반작용 같은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아이가 있었다면 이렇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그 아이에게까지 좋은 울타리가 되어줄 만한 능력까지는 없는 것이 확실하기에.


누군가가 곁에 있었으면 지금 이 시간이 좀 덜 힘겨울까.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고. 나는 그냥, 나 하나를 건사하는 것으로도 힘에 부친다고. 아직은. 갑자기 날이 싸늘해진 탓일까. 가을비라기엔 겨울비에 가까워 보이는 빗줄기가 들이치는 창을 보며 이 아침에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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