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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11. 2022

남은 날도 무사히

-182

남은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 이제 올해 끝날 때까지 평일에 쉬는 닐은 없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일요일과 겹치는데 대체 공휴일 대상이 아니라지 뭐예요.


어제 가끔 가는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프리랜서인 나는 집에서 일을 한다. 그런 지가 얼추 잡아도 10년이 넘어가니, 사실 내게는 휴일이니 연휴니 하는 것이 크게 의미는 없는 셈이다. 나는 아침마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교통 체증에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아도 된다. 월차를 쓰기 위해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여섯 시가 넘어도 퇴근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그 자리에 괜히 매여 있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말인 즉 뒤집어 생각하면 일과 일상의 경계가 더없이 불분명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게는 출근 시간이 따로 없는 대신 퇴근 시간도 없다. 업무일이 없는 대신 쉬는 날도 없다. 나는 가끔 밤 아홉 시도 넘은 시간에 메일을 보내 퇴근해버린 자기네 회사의 직원에게는 차마 연락을 할 수 없어 연락했다며 일거리를 떠안기는 갑을 종종 본다. 뭐든지 일장이 있으면 일단이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이제부터 연말까지는 쉬는 날이 없다는 그 착잡한 선언에는 나도 약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프리랜서가 쉬는 유일한 방법은 갑도 따라 쉬는 것뿐이다. 그래서 요 2주간, 나는 정해놓고 출근을 하는 정직원도 아닌 주제에 금요일 오후부터 기분이 좋았다. 주말에 별다른 일을 할 것도 아니면서. 나의 일상은 늘 그래 왔듯,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정리를 마치고 브런치에 그날 하루 분의 청승을 쏟아낸 후, 아롭 시부터는 일을 하고, 12시가 되면 점심을 먹고, 다시 오후에 일을 시작해 6시에 마치는 그런 루틴이다. 주말이라고 딱히 달라질 것도 없다. 아직도 실시간 방송을 보지 못하는 나에게 특별히 정해놓고 기다리는 TV 프로그램이 있을 리도 없고, 하루에 한 시간씩 짬을 내 펜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 특별한 취미도 없다. 그런데도 그냥, 누군가가 나에게 불시에 연락을 해 내 일상을 제 마음대로 어그러뜨릴 일이 생기지 않을 것으로 보장되는 날이 하루 늘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리고 이제 올해가 끝나는 날까지는 더 이상 그런 보너스는 없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 올해는 평일에 쉬는 날도 없대. 왜 주 4일제 안 하지.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그를 붙잡고 그렇게 투덜거렸다. 예전에 주 6일 5.5일 할 땐 어떻게 살았나 몰라. 그런 말을 하다가, 문득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참, 그렇게 주어지는 환경에 맞춰서 살아가는 존재구나 하고. 에전엔 토요일에 학교 가고 회사 가는 것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나 혼자서 살아가는 이 생활에 익숙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 올해의 남은 날 동안 내게 별 일이 생기지 않게 살펴달라고, 무척 월요일 같은 화요일 아침에 나는 그에게 그렇게 부탁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서도 이제 두 달 조금 넘게 남은 올해가 끝나는 날까지 별 일 생기지 않으시기를. 인생에 '좋은 일'은 잘 생기지 않는 법이고,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 나날이 가능한 한 오래 계속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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