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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12. 2022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이유

-183

이번 달부터는 매주 가던 상담을 2주에 한 번 정도로 조금 간격을 넓게 잡기로 했다. 워낙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탓인지 슬슬 선생님에게 할 이야기를 쥐어짜 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어서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선생님 또한 그러는 게 좋겠다고 흔쾌히 수긍해 주셔서 앞으로는 그렇게 진행할 예정이다.


나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남' 앞에서 지금의 내 상태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의외로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특히나 요즘의 나처럼, 나 스스로조차도 내 마음을 잘 모르는 상태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내 마음을 좀 더 열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런 것 또한 상담의 순기능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상기했듯 나는 지금의 내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를 모른다. 워낙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은 내가 겪은 일을 정면으로 직시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어때요? 라는 단순한 질문 앞에서 충실한 대답을 내놓기 위해 나는 여러 가지 비유를 한다. 그것이 그나마 내 부족한 말솜씨로 내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단연 많이 쓰는 것이 '떼쓰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그게 가장 액면 그대로의 내 진심이기도 하다. 요즘의 나는 마트나 백화점의 장난감 코너 앞에서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발견해 불문곡직 사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자주 느낀다. 심지어 엄마는 그 장난감을 사주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고, 심지어는 울고 불며 떼를 쓰는 나를 버려두고 저만큼 멀어져 가고 있는데도 나 혼자 장난감 코너 앞에 남아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나를 두고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도,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도 시간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흘러가고 나는 나대로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그 어느 것 하나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기분. 재미있는 건 정작 나는 어린 시절 한 번도 엄마에게 뭔가를 사달라고 떼를 써 본 적이 없는, '손 안 타는' 아이였다는 사실이지만.


어제의 상담에서도 그 이야기를 했었다. 사실 엄마가 애한테 장난감을 안 사주는 건 애가 미워서는 아니잖아요. 애가 밉고 싫어서, 애를 울리고 싶어서 안 사주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한테는 나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집에 비슷한 장난감이 이미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엄마가 지금 그걸 사 줄 돈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요. 사실 애가 그 이유를 알면, 알아서 이해하게 되면 떼를 쓰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근데 보통 엄마들은 그냥 '안 돼!"라고만 하잖아요.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사람이 백 살까지 사느니 마느니 하는 시절인데, 이 사람은 너무 젊잖아요. 그런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가 버린 게, 그게 왜 그렇게 된 건지 왜 그래야만 했던 건지 제가 그걸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요. 이해를 못 하니까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것 같고요. 그렇게 한참을 말해놓고 나서야 나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흠칫 놀랐다. 그리고 그다음 나오는 말은 조금 더 놀라웠다. 그래서 이제 포기하려고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그거 이해하는 거요. 아마 제가 죽을 때까지 고민해도 저는 그 문제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정말 어떤 기가 막힌 의사 선생님이 와서 그 사람의 몸 상태는 이러저러했고,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일을 당해도 하나도 이상할 거 없었다고 설명해서 저를 납득시킨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아무리 골 싸매고 고민한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잖아요. 그 말을 해놓고 또 울컥 눈물이 터져서 나는 한참을 울었다.


'왜'라는 것은 사실 결과에 어떤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특히나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그 '왜'를 끊임없이 알고 싶어 하는 존재인 것 같다. 그리고 어제 상담에서 그 말을 쏟아내 놓고서야 나는 지난 반년간 그 문제가 한 시도 내 마음에서 떠난 적이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의문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그는 그렇게 갑작스레 나를 떠나야만 했는지.


대개의 엄마들은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에게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냥 '안 돼!'라고만 할 뿐이다. 설명해봤자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이유가 너무나 구차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엄마의 입에서 안 된다는 대답이 나온 이상, 심지어는 울고 불며 떼를 쓰는 아이를 남겨두고 저만치 멀어져 가기 시작한 이상, 아이는 제 힘으로 울음을 그치고 엄마를 따라가야 한다. 퉁퉁 부은 얼굴에 입술이 댓 발은 튀어나왔을지라도.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서 엄마가 사주지 않는 장난감을 가리키며 떼를 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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