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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17. 2022

카톡이 없는 풍경

-187

모든 분들이 그러셨겠지만 내게도 어제 하루는 아무 데서도 카톡이 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그러나 내게는 그냥 아주 평온한 하루였다. 이상한 해방감마저 들었다고 하면 될까. 어린 시절 심하지 않은 감기 기운을 핑계로 하기 싫은 체육 수업에 나가지 않고 보건실 침대 위에 누워 창가로 들어오는 반짝거리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을 때나 느끼던, 안락한 일탈감이었다. 시간도 가리지 않고 요일도 가리지 않고 쏟아지던 광고 카톡마저 모조리 끊어져버린 어제 하루는 내게는 꼭 그런 기분이었다.


물론 그걸로 모든 게 다 끊어지진 않는다. 카톡이 아니어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연줄로 다른 누군가와 엮여 있기 때문에 말이다. 시급하게 급한 일이라면 문자를 하거나 전화를 하면 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연락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시급하지 않은 연락들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 심지어 거기에는 내 책임과 잘못은 요만큼도 없다는 사실이 주는 불가사의할 정도의 후련함과 자유로움이 적어도 내게는 분명히 있었다. 이왕 이런 식으로 맛이 갈 거였으면 평일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나쁜 생각을 잠시 하다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대미지가 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한 게 나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다만 한 가지, 웃지 못할 순간은 있었다. 늘 그랬듯 그의 핸드폰으로 카톡을 보내 오빠 카톡 먹통이래 온 데서 난리났어 라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카톡이 먹통이라는 말을 카톡에다 하려고 하다니. 이게 무슨 핸드폰으로 핸드폰 분실 신고 하는 상황인가 하는 생각에 혼자 한참을 웃었다.


문득 그와 내 사이도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중간에 존재하는 뭔가가 끊어져서 내 말은 그에게로 가 닿지 않고 그의 말 또한 내게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태. 어제 하루 동안의 먹통이 IDC에서 난 화재 때문이듯, 이 일은 그의 잘못도 나의 책임도 아닐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카톡과 함께 뻗어버렸던 메일도 브런치도 웬만큼 정상으로 돌아온 모양이다. 아마, 이 사태가 월요일까지 이어지면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 수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반납하고 미친 듯이 매달린 덕분이겠지. 일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합법적으로 나태해질 기회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약간 아쉽기도 하다. 이것 또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시간이나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쌀쌀한 공기에 어깨를 움츠리게 되는 월요일 아침이다. 추워진 날씨에 감기 안 걸리게 따뜻하게 지내라는 인사를 건네 본다. 비록 그는 나의 카톡을 읽을 수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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