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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18. 2022

벌써

-188

미쳤나 봐. 내일 아침에는 영하 1도까지 수은주가 내려가는 곳이 있을 수 있다는 뉴스를 보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핸드폰을 열고 내가 사는 곳의 내일 예상 온도를 확인해 보니 영하 1도는 아니더라도 최저 온도가 4도, 최고 온도가 14도라는 초겨울 날씨가 될 모양이었다. 미쳤나 봐. 그래서 다시 한번 그렇게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달 반 전까지 에어컨을 들었었다는 투덜거림은 이미 내 입에서부터 헤먹었다. 날씨는 그렇게, 이제 겨울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기 시작할 모양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정확히 오전 5시 53분에 눈을 떴다. 지나치게 이르지도 않았고, 쓸데없이 일찍 깨버린 것에 대해 아쉬워할 필요도 없는 적당한 시간이었다. 그냥 기지개 한 번 길게 펴고 일어나면 딱 알맞았다. 그러나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싫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는 대신 이불을 어깨까지 들쳐 덮고는 달팽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한참을 끙끙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징징대다가 아, 일어나자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억지로 이불을 들추고 일어났다. 30분간의 훌륭한 늦잠이었다. 벌써 날씨가, 잠은 깨 놓고도 이불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서 늦잠을 자게 되는 그런 계절이 되었구나. 아침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혼자 남겨진 후 견딜 수 없는 것은 몇 가지가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은, 그가 떠나고 나만 혼자 남았는데도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 같은 것이다. 그가 곁에 없는데도 나는 때가 되면 알아서 배가 고프고, 졸리고, 피곤해진다. 나만 혼자 남았는데도 계절은 꽃이 피었다가 지고, 날씨가 더워졌다가 추워지고, 이제 조만간 눈이 내릴 것이다. 감히 내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그렇게나 순식간에 잃어버렸는데도 시간은 예전과 똑같이 흐르고 나 또한 예전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때로는 그 어떤 것보다도 슬프고 가슴이 시리다. 이제 맞는 건지, 이래도 되는 건지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가끔은 그런 생각들에 멀미 비슷한 오심이 차올라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하는 순간도 있을 만큼.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내내 그에게 묻고 있다. 이게 맞는 건지. 이래도 되는 건지 하는 문제를. 당신이 없는데 내가 이렇게나 멀쩡하게, 덥다고 짜증을 내고 춥다고 늦잠을 자면서 살아가도 되는 건지를. 나 너무 빨리 멀쩡해진 게 아니냐고. 너무 빨리 아무렇지 않아진 게 아니냐고. 이러면 안 되는 게 아니냐고. 물론 액자 속의 그는 나를 슬픈 얼굴로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는다.


참 이런 말은 이젠 좀 안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왜 그렇게 빨리, 서둘러서 나를 떠나갔느냐고.




결국 지난 주말의 그 난리통에 휩쓸려 글이 하나 날아간 모양이다. 따로 글을 백업해 두지 않기에 되살릴 방법 같은 것도 없다. 어찌어찌 기억을 더듬어 다시 쓴다 한들 이미 그 글을 쓸 때의 그 마음가짐이 아닌 이상 같은 글은 되지 못할 것이기에. 뭐 어쩔 수 없지. 그냥 그렇게 생각해 버리기로 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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