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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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가끔 오는 핫딜 광고 카톡 메시지는 대부분 내게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이트 덩어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중에 가끔, 어? 하는 기분으로 굳이 클릭해서 내용을 살펴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제 온 메시지 하나가 그랬다. 다른 게 아니라, 감귤을 싸게 판다는 내용이었다. 이야, 벌써 귤 사다 놓고 먹는 계절이 되었구나. 잠시 그런 때아닌 감회에 젖었다.


귤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도 나도 귤을 좋아했다. 맛있으면 정말 맛있고 맛이 없어봐야 납득할만한 수준인 데다 제철이기만 하면 적당히 싼 가격에 잔뜩 구할 수 있는 귤은 가뜩이나 내게 챙겨 먹일 과일 문제로 장 볼 때마다 골머리를 앓던 그에겐 대단히 고마운 존재였다. 어디 그뿐인가. 귤의 가장 큰 미덕은 먹기 위해 따로 씻거나 껍질을 까거나 칼로 써는 등의 손질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 받았을 때 물러지고 터진 것 몇 개를 가려내는 수고 정도만 해 놓으면 나머지 귤들은 각자 알아서 몇 개씩 들고 앉아 알아서 까먹으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래서 귤은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그 무렵부터 겨울을 나기까지, 우리 집에서는 준 식량 취급을 받았다.


언제나 그랬듯 귤을 사는 것은 내가 할 일이었다. 내가 손품을 팔아 10킬로짜리 한 박스 정도를 주문해 놓으면 그는 그 귤을 들고 앉아 물러지거나 터진 귤들은 따로 가려내고 나머지 귤들은 그 상태에 따라 서너 그룹 정도로 분류해서 서로 눌리지 않도록 쟁반에 한 층씩 가지런히 담아 서늘한 베란다에 내놓고 몇 개씩 갖다 먹곤 했다. 그렇게 먹는 귤들은 오래갔고, 그 사이 조금씩 더 후숙되어 더 맛있어졌다. 그렇게 몇 년의 겨울 동안 우리는 얼추 몇천 개쯤의 귤을 질리지도 않고 먹어 없앴다. 그렇게 한 박스에 만 몇천 원 남짓하던 귤이 슬슬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거야말로 이젠 겨울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런 귤이 나오는 시기가 되었다. 그러나 올해는 모르겠다. 내가 10킬로씩이나 귤을 사다 놓고 먹을 수 있을까. 설령 산다 한들, 그가 하던 것처럼 받자마자 박스를 열어 터진 귤들을 가려내고 성한 귤들은 상태별로 나눠 차곡차곡 담아 베란다에 내놓는 그런 곰살맞은 짓을 할 수 있을까. 이쯤에서 나는 고개를 젓게 된다. 아마도 올 겨울 내가 귤을 먹게 된다면 집 앞 슈퍼에서 한 봉지 정도나 사다 놓고, 마음 내킬 때 한두 개씩 몇 번을 집어먹고 마는 정도로 그치지 않을까.


언제쯤 되면 나는 반사적으로 그와 함께 했던 것들과 먹었던 것들과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떠올리며 도리질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게 과연 가능하긴 할까. 올 겨울이 끝나기 전에 나는 나 혼자만을 위해서 귤을 사다 먹을 수 있을까. 의외로 별로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두 번째부터는 몰라도 처음 먹는 귤 앞에서 아마도 많이 울게 되겠지만. 그냥 그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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