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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24. 2022

가만 안 둬

-194

오늘은 그의 뒷담화나 조금 해볼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는 키가 작았다. 내 키도 작은 편인데 그런 나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키는 작은 편이었는데 살집은 꽤나 있는 편이어서 마치 커다란 곰인형 같아 보였다. 그건 그와 내가 처음 만나던 시절부터도 그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통통함을 조금 넘어선 체격에 대해 주눅 들거나 위축되는 듯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날씬한 사람들보다 몇 배나 몸가짐이 날랬고 부지런했다. 실제로 달리기도 굉장히 잘했다. 철이 좀 들고 나서는 그런 적이 없었지만 한참 그도 나도 어리던 시절에는 이런저런 일로 나를 약 올려놓고 내빼버리면 나로서는 붙잡아서 등짝 한 대 때릴 재간이 없어 몇 배로 약이 올라 발을 동동 굴렀었다.


30대를 지나면서부터 그는 슬슬 머리숱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유전도 있었을 테지만 아마도 그 무렵 어줍지 않은 창업을 해서 밤마다 온갖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날을 보내는 세월이 몇 년이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40을 넘고 50을 향해 가면서부터 그의 정수리는 표가 나가 훤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탈모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 보였지만, 지금에서야 나는 내가 사다 놓은 두피 브러시를 꼬박꼬박 쓰던 그를 떠올리며 뒤늦게 그게 꼭 그렇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치아가 약했다. 이것 또한 유전이라고 그는 말했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그는 치통에 고생하는 때가 있었다. 그럴 때의 상비약으로, 나는 내가 쓰는 화장솜에 클로브 오일을 희석해 묻혀서 그에게 건네주곤 했다. 그건 어디서 주워들은 민간요법 처방이었는데 당장 치과를 갈 수 없을 때 발작하듯 찾아오는 치통에는 꽤 잘 들었다. 몇 년 전 정중앙에서 조금 왼쪽에 있는 앞니 한쪽이 반 정도 부러진 일이 있었다. 그 이빨 좀 어떻게 하자고 내가 몇 번을 말했지만 그는 그때마다 온갖 핑계를 대며 치과에 가지 않았다. 그것도 지금 생각하니, 가뜩이나 약하고 문제 많은 본인의 치아를 가지고 치과에 가면 돈이 얼마가 깨질지 견적이 나오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구나 싶다. 그땐 그냥 무서워서 그러는 줄로만 알고, 다 큰 어른이 치과 가는 게 뭐가 무섭냐고 한참이나 잔소리 겸 놀리는 말들을 해대고 넘어갔었지만.


체격도 머리숱도 치아도,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더 좋아지기는 힘든 것들이다. 나에게 말은 하지 않았다지만 그는 아마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혼자 열심히 고민한 끝에, 이 이상 늙어가는 모습을 보이느니 이쯤에서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이 세상에 남은 나는 계속해서 늙어가고 나이를 먹어갈 테지만 그는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 지난 4월의 그 모습 그대로 있을 테니까. 다만 걱정이다. 그는 늙고 나이 든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못 알아보는 척 스쳐가 버리면, 그때야말로 어떻게든 쫓아가서 등짝을 때려야지, 하고 그의 액자를 향해 선전 포고하듯 말해본다. 그때 가서 쌩까기만 해 봐. 가만 안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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