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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25. 2022

혼자만의 겨울

-195

이미 적었듯, 나는 이번 마트 주문을 하면서 미역국을 사지 않았다. 그냥 건너뛰거나, 정 무엇하면 아니면 라면을 낱개로 파는 집 앞 슈퍼에 가서 미역국 라면이라도 하나 사서 끓여먹고 치울 요량이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래 놓고, 어제 나는 편의점에 가서 레토르트 미역국을 사 왔다. 가격이 7천8백 원이나 했지만 원 플러스 원 행사로 육개장도 하나 가져올 수가 있었으니 사실 싸게 먹힌 편이라고 스스로에게 강변 중이다. 그 육개장으로도 한 끼를 훌륭하게 때울 수 있을 테니까. 그가 했듯, 한우씩이나 사 와서 미역국을 직접 끓일 엄두까지는 안 난다는 빈약한 변명과 함께.


미역국을 먹을지 말지 고민한 판국에 케이크 따위는 당연히 안중에 없었다. 내 생일이 다가오면 우리는 보통 서울까지나 가서 우리가 케이크 맛집이라고 찍어놓은 한 빵집에 가서 반으로 자른 딸기가 군데군데 박혀있는 생크림 케이크를 사다 먹었다. 그러나 나 혼자 먹겠다고 서울씩이나 가서 그 케이크를 사들고 오는 건 미친 짓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것 역시도 패스하거나, 정 무엇하면 편의점에서 파는 조각 케이크 정도나 하나 사서 출출한 오후에 커피 한 잔과 함께 먹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래 놓고 나는 어제저녁 새벽 배송으로 치즈케이크를 하나 주문했다. 베이커리제인 다른 케이크들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가격이고 이걸 사다 놓으면 못해도 대여섯 번 정도의 오후 간식은 충당할 수 있으니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사 먹는 것보다 싸게 치인다는, 역시나 나름의 변명거리가 있었다.


오늘은 근 30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맞는 내 생일이다.


이 글을 쓰고 나면 반년 내내 내게 무슨 일이 있을 때 늘 그래 왔듯 봉안당에 가서 그의 얼굴을 보고 올 예정이다. 오늘 내 생일인데, 근데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떡하면 좋으냐는 뭐 그런 말들을 주절주절 어놓고, 아마도 말 끝에 눈물을 좀 짜고, 그러고 돌아와서 편의점에서 사다 놓은 미역국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쯤엔 치즈케이크 한 조각으로 간식을 때울 예정이다. 아무도 내게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낯간지러운 말 같은 건 하지 않을 것이다. 미리 다 잘라져 있는 데다 생일 초 같은 건 주지 않는 기성품 케이크를 산 이유는 그게 싸서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내게 그 케이크를 앞에 놓고 해피 버스데이 투 유 같은 걸 불러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올해 내 생일은 그럴 예정이다.


뭐 올해만 그럴까. 앞으로도 내내 이럴 테니, 이제 조금씩 적응해 가는 편이 좋지 않겠나, 하고 한없이 굴을 파고 들어가려는 스스로의 뒷덜미를 지그시 잡아당기며 말해 본다. 지난 27번의 생일은 내내 빼곡하게 행복했고, 그동안 내가 평생 누릴 생일의 행복감은 몰아서 다 써버렸다고. 그러니 이제부터는 혼자서, 조금은 재미없게 보내야 하는 거라고. 뭐 그렇게 생각하면 대충 계산이 맞을까.


날이 더울 땐 더러더러 가슴이 스산하긴 해도 외롭다는 생각 같은 건 조금 덜 들었었는데 날이 쌀쌀해진 탓인지 부쩍 이제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자주 실감하게 된다. 그래도 어떡해. 이제 앞으로의 내 삶은 내내 혼자만의 겨울일 텐데. 아무리 떼를 써도 바뀌는 게 없다면, 그렇게 조금씩 적응해갈 수밖에.


그래도 그는 아마, 편의점 미역국에 기성품 케이크나마 사다 놓은 것에 대해 잘했다고 말해줄 것 같다. 나라도 나를 축하해야지. 고생한다고, 욕본다고 말해줘야지. 이젠 정말로 이 세상엔 나 혼자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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