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당신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Oct 26. 2022

이런 생일선물은 사양합니다

-196

어제는 그의 봉안당에 다녀왔다. 그를 처음 봉안당에 모시던 때에는 사방에 봄꽃이 가득했는데 이젠 길 따라 낙엽이 진 가로수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스산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나는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우편함에 꽂혀 있는 그렇고 그런 우편물들 속에 낯선 것이 하나 끼어 있었다. 무려 경찰서에서 온 것이었다. 잘못 온 것인가 했지만 주소도 우리 집 주소가 맞았고 받는 사람도 내 이름이 맞았다. 일단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게 뭐지. 이제 뭘까.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집에 들어가는 그 몇 분의 시간조차 아까워서, 나는 떨리는 손으로 거칠게 봉투를 뜯고 그 안에 두 번 세 번 접혀진 서류를 꺼내 펼쳤다.


변사 사건. 혐의 없음으로 내사종결.


그 반갑지 않은 문서 속에는, 그런 말이 덩그러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 하얗게 감광되었다. 그건 온전한 당혹감도 아니고 제대로 된 허탈함도 아니었다. 오히려 약간의 분노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이게 뭐지. 그 사람들의 시각에서 나는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을지도 모르는 관련자 혹은 용의자였다는 이야긴가.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남들 사는 날의 반도 채 못 살고 떠난 사람의 몸에 두 번 세 번 난도질을 하기 싫어 죽어도 부검은 하지 않겠다고 기를 쓰고 매달렸지만 '변사 사건' 앞에서 유족의 뜻 따위 검사의 부검영장 한 장 앞에서 그지없이 무력하던 그 순간을. 그의 부검이 있던 날, 관할 경찰서의 형사 둘이 집으로 들이닥쳐 집안의 약이란 약은 전부 한 알씩을 다 수거해 가던 것을. 그냥 절차상의 업무라고 그들은 말했지만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 절차가 그의 부검 결과에서 뭔가 일반적이지 않은 점이 나왔을 때 그에 대한 비교를 하기 위해 가져 간 것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유족의 눈에 두 번 눈물을 내 가며 한 부검의 결과를, 나는 결국 듣지 못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이 없다는 무성의한 말조차도 없었다. 부검 결과는 한 달 후쯤 나올 텐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으면 연락이 갈 거고 이상한 점이 없으면 그냥 아무 연락도 안 갈 거예요. 그런 무신경한 말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 반년이 지난 어제까지도 아무 연락이 없기에 그 일은 점차 내 기억 속에서 조금씩 엷어지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고, 그 반년의 시간 내내 나는 국가 기관으로부터 같이 사는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인간의 범주로 분류돼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어제부로 해제된 것이다. 잔뜩 생색낸 생일 선물이라도 되듯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험악한 표정을 짓고는 집으로 돌아와 하필이면 어제 같은 날 나라에서 보내주신, 우리가 반년 넘게 심사숙고한 결과 네가 네 남편의 죽음에 딱히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그 황공한 문서를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명확하지 않은 사유로 죽음을 맞은 사람들 중에는, 아닌 게 아니라 함께 사는 누군가에게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수 있을 것이고 그걸 밝혀내는 것 또한 국가의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절차가, 사후 통지가 꼭 이런 식이어야만 하는지, 나는 아무래도 그 점을 납득할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이 나뿐만 아니라,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날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 문서의 내용대로 혐의가 없는 거라면 그 문서를 받을 사람은 정말로 떠난 사람의 부재를 슬퍼하고 있는 유족일 텐데, 그들에게 보내는 문서 양식을 한 종류 정도 더 만드는 게 그렇게까지 예산이 들고 어려운 일일까. 귀하의 댁 내에서 발생한 변사 사건을 조사하였으나 별다른 부자연스러운 점을 발견하지 못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런 간단한 두 문장 정도면 충분했을 텐데.


머리가 좀 식고 생각해 보니 그걸 그렇게 마구 찢어서 내다 버려도 되는 것이었는가 하는 후회가 든다. 그러나 그 서류가 없어짐으로 인해 뭔가 내게 불합리하고 불편한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싸워야지. 그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이 어쩔 수가 없다면, 나 또한 이 문제에 있어서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으므로. 왜 이렇게 내 가슴을 두 번 세 번 찢어놓는지에 대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만의 겨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