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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04. 2022

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205

새벽 네 시쯤 어설프게 한 번 잠에서 깨었다가 다시 잠든 탓인가, 오늘도 30분이나 늦잠을 잤다. 투덜거리며 일어나 언제나처럼 환기 좀 하려고 창문을 열었다가 나는 밀려들어오는 찬 바람에 흠칫 놀라 기껏 열었던 창문을 반사적으로 다시 닫았다. 뭐야. 날씨 왜 이렇게 추워.


닫았던 창문을 다시 열어놓고, 꽃병에 꽂힌 국화를 조금 손질해 다시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 몇 분 사이, 창가에 면한 그의 책상은 마치 성에라도 낀 듯 싸늘해져 있었다. 그의 컴퓨터에 띄워진 이런저런 알림을 좀 끄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 바람에 팔뚝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날씨 왜 이래. 겨울이야?


아침의 할 일을 적당히 마치고 내 자리에 앉았다. 열어본 포털 사이트에는 오늘 아침에 서울은 기온이 영하 1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는 스산한 뉴스가 올라와 있었다. 어쩐지. 오늘 아침에 바람이 차더라. 이젠 뭐 가을도 아니고 그냥 겨울이네, 겨울. 하긴 그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요즘 날씨는 봄이 한 달, 가을이 한 달, 나머지는 반반 갈라서 다섯 달이 여름 다섯 달이 겨울이라고. 그런 그의 계산에 의하면 이제 11월이니 엄연히 겨울이다. 하긴 11월도 되었으니 이제 좀 있으면 수능이던가. 대학 입시 제도가 수능으로 바뀌면서 시험 날짜가 11월로 당겨졌지만 그래도 수능 치는 날 언저리는 귀신같이 날씨가 추워지더라는 그간의 데이터를 떠올려 본다. 여름 내 쳐다보지도 않던 인스턴트커피가 땡기는 아침이 늘어나고 있다. 뜨거운 물에 커피믹스 두 개를 타서 홀짝홀짝 마시면서, 아 커피 맛있다 하는 감탄사를 늘어놓기 시작한 그 무렵부터 이미 계절은 겨울을 향해 가속하고 있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날씨가 차졌다'는 생각을 한 지는 벌써 한 달 정도는 된 것 같다. 여름 홑이불로는 서늘해진 새벽 공기를 막아내지 못해 새벽에 잠에서 깨곤 하던 그 무렵부터. 그러나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니 그때 느낀 것은 '춥다'가 아니라 '서늘하다' 정도의 감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다. 지금 느끼는 이 때이른 춥다는 느낌도, 아마 진짜 겨울이 오고 그 아침 공기를 쐬어 보면 그때는 그냥 좀 쌀쌀한 정도였네 하고 깨닫게 되는 날이 오겠지. 어쩌면 사람의 인생이란 그렇게, 다 지나가고 나서야 깨닫는 아차 하는 순간의 연속인 게 아닐까. 그가 곁에 있던 많은 나날들 동안 그게 행복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온갖 다른 불평과 투덜거림에 묻혀 그냥 흘려보내버린 내가 그랬듯이.


꽃이 지고 나서야 그게 봄이었다는 걸 깨닫는 건, 그건 꼭 봄에만 일어나는 슬픈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또 그렇게, 어어어 어 하는 사이에 올해 가을도 거의 다 놓쳐버리고 만 게 아닐까. 창문 너머 내다보이는 길 건너편 아파트 단지 앞길에 세워진 가로수들의 미처 덜 진 단풍을 바라보며, 오늘 아침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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