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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05. 2022

겨울 옷은 좀 있나요

-206

아침에 일어나 체감하는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고 있다. 집 안에 앉아서도 손이 곱는 일도 더러더러 있다. 이런 식이라면 다음 주 외출을 할 때는 지난달에 얇은 옷 몇 겹을 껴입는 한이 있어도 꺼내지 않았던 패딩을 기어이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살집이 조금 있는 편이어서 그랬는지 더운 것보다는 차라리 추운 쪽을 견디기 편해했다. 최근에야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그런 일이 없었지만 30대 무렵까지만 해도 남들은 패딩에 코트에 온갖 것을 껴입고 다니는 날씨에도 혼자 좀 두꺼운 니트 스웨터 한 장만 걸친 채로 찬바람 부는 밖을 잘도 쏘다녔었다. 그가 말하는 가장 기분 좋은 순간 중의 하나는 겨울밤 잠자리에 들려고 이불을 들추고 누웠을 때, 경상도 말로 '찹찹한'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그 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전기장판과 극세사 이불을 쓰지 않았다.


여러 모로 요즘 날씨는 그가 딱 좋아했을 법한 그런 날씨다. 아예 또 날이 영하로 떨어져 대놓고 추워져 버리면 이 아슬아슬한 서늘함이 사라지고 생리적인 춥다는 기분만 들어서, 그건 또 그렇게까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라고 그는 늘 말하곤 했으니까. 지금쯤엔 아마 혼자 신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나대로 그렇게 시원하고 차가운 걸 좋아하는 그가 신경 쓰여 어쩔 줄을 몰랐다. 새벽에 잠에서 깨면 나는 늘 아무렇게나 걷어찬 그의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었고 한겨울에도 집에서는 반팔 티셔츠를 입는 그에게 팔이 갑갑한 게 싫으면 가디건이라도 입으라며 가디건을 사다 떠 안겼다. 몇 년 전에는 무릎 담요를 사다 안기기까지 했다. 그는 그 무릎담요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한겨울 날씨가 아주 많이 추워지고 자신의 책상이 면한 창가로 찬바람이 솔솔 새어 들어오면 슬그머니 내가 사다 떠안긴 무릎담요를 꺼내와 다리를 덮곤 했고 나는 그 모습에 내심 흐뭇해했었다.


그가 떠난 것은 기온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하던 지난 초봄이었다. 그때 떠나간 사람에게 나날이 쌀쌀해지는 이 날씨를 견딜만한 옷이나 좀 있는 건지, 그런 게 슬슬 걱정된다. 발바닥 갈라지면 붙일 반창고야 얼마 전 봉안당에 넣어주고 왔지만 겨울 옷은 그럴 수도 없는데. 잔병치레는 잘 안 하는 사람이었지만 요맘때쯤 크게 감기 한 번씩 걸리고 넘어가곤 했었는데. 거기선 약 먹으라고, 이불 좀 잘 덮고 자라고, 옷 따뜻하게 입으라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을 텐데 도대체 어쩌고 있는 건지.


그곳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그 어떤 시름도 걱정도 없으니 간 사람 걱정은 할 것 없고 살아있는 사람이 걱정이라지만, 막상 보내 놓은 마음은 또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물어본다. 당신, 거기선 잘 지내나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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