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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12. 2022

낙엽으로 지는 동안

-213

그가 있는 봉안당은 고갯마루에 있다. 버스에서 내려 그리 급하지 않은 완만한 경사길을 느긋한 마음으로 5분쯤 걸어올라 가면 옆으로 꺾어 드는 길이 하나 나오고, 그 길을 따라 5분쯤 더 들어가면 그곳에 있다. 양 옆으로는 숲이 우거져 있어서 언제나 초목의 냄새가 난다. 예전 우리의 소원 중의 하나가 일신에 매여있는 복잡한 일들을 다 정리하고 나무 냄새 풀 냄새 나는 곳에 작은 집 한 채를 얻어서 조용하게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었는데, 성질 급한 그는 나를 기다리지 않고 그런 곳으로 먼저 가버린 셈이다.


어제는 유독 봉안당으로 향하는 길에 낙엽이 자욱하게 떨어져 있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이제 어영부영 11월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가을의 낙엽은 봄의 벚꽃만큼이나 그 수명이 짧다. 이러다가 어설픈 비라도 한 줄기 내리고 나면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낙엽들은 싹 떨어져 버릴 테고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계절이 내내 그랬으니까. 이번 가을 들어 그를 만나러 처음 가는 것도 아니면서도, 어제 유독 낙엽이 많이 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그를 봉안당에 모셔놓고 걸음 할 무렵은 봄꽃이 만개하다 못해 조금씩 져 가는 어느 봄날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봄꽃 따위를 볼 정신이 없었다. 그 무렵의 나는 봉안당 안 그의 앞에서만 울었던 게 아니라 그를 만나러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내내 울었고 그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내려오는 내내 울었다. 그래서 내가 지나는 길 양 옆으로 봄꽃이 아니라 불꽃이 터지고 있었더라도 눈을 돌릴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풍경이 여름의 녹음을 거쳐 지금의 낙업이 되기까지, 시간은 그렇게 묵묵히 흘러왔고 나 또한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가 유행한 지난 몇 년간, 우리는 가급적이면 밖에 나가지 않고 지냈다. 그가 운전을 포기한 작년 봄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지난 2년 간은 봄꽃도 가을 낙엽도 창 밖으로 보이는 길 건너편 아파트의 가로수들을 보는 정도로 만족했었다. 오히려 올해 들어 나는 봄의 꽃들과 가을의 낙엽들을 더 많이 보고 향유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봉안당으로 올라가는 내내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올 테고, 벌써부터 꺼내기 싫어 이리저리 미루고 있는 패딩이 없이는 집 앞 편의점조차 가기 힘들 만큼 추운 시간들이 다가오고, 또 지나갈 테다. 시간은 나 하나를 위해 멈추어 주지 않으며 나를 위해 더 빨리 흘러가 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참고 견딘다는 감각조차도 없이, 그냥 창밖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것뿐인 게 아닐까. 발치에 쌓인 낙엽을 밟으며, 어제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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