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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14. 2022

바쁘니?

-215

며칠 전 단골 가게 사장님이 새로 들어온 물건인데 한 번 드셔 보시라고 컵수프 한 통을 주신 일이 있었다. 가뜩이나 저녁 무렵의 때아닌 공복감에 시달리는 나에게는 대단히 감사한 물건이었다. 어제도 여덟 시가 훌쩍 지난 늦은 시간에 밀려드는 출출함을 견디지 못하고 컵수프 하나를 타서 홀짝홀짝 마시며, 저물어가는 일요일을 아쉬워하고 있던 중이었다.


부재중 전화가 한 통 들어와 있었다. 이 시간에 누구지, 하고 이름을 확인해 보니 가끔 전화를 주시는 지인 분이었다. 별 다른 용건 없는 안부인사겠거니 생각했다. 오늘은 시간도 늦었고, 내일 날이나 바뀌면 전화 한 통 해보던지 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다.


메시지가 왔다. 바쁘니?


여기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의 안부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했을 때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문자 메시지 씩이나 남기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건 뭔가 '힐 말'이 있을 때의 패턴이다. 도대체 이 시간에, 심지어 일요일 밤에 가까운 저녁에 할 말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는 답문자로 무슨 일 있으신지를 물었다. 그리고 답은 제깍 왔다. 응. 남편 일로.


순간 울컥, 화가 치밀었다.


물론 같이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란 그런 것이다. 아무래도 곱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점보다는 밉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더 눈에 많이 띄게 마련이다. 멀리 갈 것이나 있나. 몇 달 전까지의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우리 남편은, 우리 부인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누구든 붙잡고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이미 장성해 출가한 아들도 딸도 있으신 분이 오죽이나 붙잡고 말할 데가 없으면 이 시간에 내게 전화를 하셨겠는가. 그런 생각도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꼭 그만큼이나 동시에 든 생각은, 내가 그를 잃어버린 것이 이제 겨우 반년이 조금 지났는데 그런 사람을 붙들고 꼭 그런 이야기를 해야겠느냐는 원초적인 역정이었다. 재수하는 사람 앞에서 가고 싶은 대학 못 갔다고 푸념하기, 사고로 다리 한쪽 잘려나간 사람 앞에서 요즘 신발 사이즈들이 너무 작게 나와서 맞는 신발이 없다고 투덜대기, 집에 쌀이 떨어져 굶고 있는 사람 앞에서 햅쌀이 아니라 맛이 없다고 배부른 소리 하기. 이런 개념들이 줄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분에게는, 내가 불과 반년 전에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냈다는 기억 자체가 휘발되고 없는 걸까. 워낙 신세를 진 일도 많고 실 끊어진 연처럼 이 세상 위를 둥둥 떠서 부유하고 있는 요즘의 나를 붙들어주는 고마운 분들 중 한 분이기도 해서 어지간하면 하지 않는 짓인데, 결국 나는 어제 못 본 체하고 그분에게 다시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날이 바뀌었고, 조금은 머리가 식었다. 이 글을 쓰고 나면 나는 그분에게 전화를 해서 어제는 시간이 너무 늦어 연락을 못 드렸다고, 또 무슨 일이신데요 하고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살가운 목소리로 말을 건넬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배부른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그분의 넋두리를 한참이나 들어주고, 몇 마디 성의껏 맞장구를 친 후 전화를 끊을 것이다. 여전히 화는 나고, 서운하다. 그러나 그런 것 또한 살아가는 과정이니 어찌할까.


시간이 조금 더 흘러가면 이런 일로 고마운 분들에게 나 혼자서나마 화를 내지 않아도 되게 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게는 여전히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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