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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16. 2022

갑자기 쌀쌀해진 이유

-217

이번 주 들어서 이상하게 집 안에 있는데도 춥고 손이 자꾸 곱아서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춥기에는 날짜가 조금 이른데.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이번 주 수능 치는구나. 그래서 이러는구나 하고.


그는 학력고사 세대였고 나는 수능 세 번째 기수다. 우리 때는 학교 가면 맨날 듣는 소리가 니네들 올해 대학 못 가면 내년부터는 입시제도가 하늘과 땅만큼 바뀌기 때문에 대학 문턱도 못 넘게 될 거라고, 그러니 너네는 재수도 틀려먹었고 올해밖에 기회가 없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그는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학력고사를 직접 치지는 않았지만 매년 학력고사는 그 해 크리스마스 무렵에 쳤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학력고사를 치를 무렵이면 좀 풀렸던 날씨도 귀신같이 추워지곤 해서, 저 시험은 그 해의 가장 추운 날을 일부러 골라서 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수능으로 대학입시가 바뀌고 날짜가 11월로 당겨져서 그런 일은 없겠거니 생각했으나 내가 기억하기로 수능 치는 날 부근은 역시나 귀신같이 날씨가 추워졌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대학생이 되고 난 후, 그가 날마다 녹음해서 들어보라고 건네주던 고 신해철 님이 진행하던 한 심야방송에서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대학시험은, 물론 당사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이겠지만 10년만 지나 보면 내 인생의 사건 top 10 안에는 명함도 못 내밀게 된다고. 본인도 그렇다고. 그러니 오늘 시험 잘 치신 분들은 즐기시고, 혹시나 바라는 만큼의 성적을 받지 못한 분이 계신다면 그걸로 너무 낙담하지 마시라고. 그걸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고. 그 멘트는 시간이 20년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그분의 명 멘트 중 하나다.


요즘은 세월이 많이 달라져서 정말로 저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어떤 짓궂은 신이 나타나 내게 시간을 20대로 되돌려주겠다고 하면 나는 싫다고 할 것 같다. 요즘의 20대들은 너무나 열심히, 치열하게 살기 때문에 나는 그들만큼 열심히 살 자신이 없어서다. 그런 세상이니, 대학입시의 결과가 과연 우리 때처럼 몇 년만 지나면 내 인생의 사건 top 10 안에 명함을 못 내밀 정도일지 그것까지 확신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눈앞에 닥친 것에 비해 지나고 나면 빨리 그 크기가 쪼그라들기는 할 것이라는 사실 하나는 장담할 수 있다. 세상엔 그보다 더 어렵고 힘들고 중요한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말이다.


혹시나 이 브런치를 읽으시는 분들 중에, 본인 혹은 본인 주변에 내일 중요한 시험을 치르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떨지 말고, 쫄지 말고 준비한 만큼만 하고 오시라는 말씀을 건네드린다. 결과가 좋으면 좋은 대로, 다소 아쉬우면 그건 인생의 여러 고비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아주 작은 단계에 불과하니 앞으로 더 잘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힘내시라는 말씀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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