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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17. 2022

수면양말을 샀다

-218

11월에 들면서 부쩍 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문제 중의 하나는 집이 벌써부터 춥다는 점이다. 아직 제대로 된 겨울도 아닌데, 벌써부터 이래 가지고서야 올 겨울을 어떻게 나려는지 심각하게 걱정될 정도다. 보일러를 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집 안의 공기 자체가 싸늘하게 식어버려 좀체로 덥혀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건 어느 정도는 심리적인 문제이기도 할 것이고 한 사람 분의 온기가 사라져 버린 데 대한 실제적인 반응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며칠 전 나는 다소 오버다 싶으면서도 무릎담요를 꺼냈다. 한결 낫기는 하지만 그걸로도 썩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집 앞에 나갈 때나 껴입던 플리스 가디건까지 입고 무릎담요로 다리를 둘둘 둘러싼 채 그래도 아 왜 이렇게 추워 하는 소리를 연발하고 있자면 나의 호들갑스러움과 나약함이 그지없이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지금 이렇게 추운 게 나만 이런 건지, 아니면 내가 실제 이상으로 춥게 느끼는지를 분간할 수가 없어서 더욱 그렇다.


큰돈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무언가가 없을까. 그런 걸 고민하다가, 나는 수면양말을 몇 켤레 사기로 했다. 몇 년 전 겨울을 나는 데 꽤 유용하게 썼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그의 것도 같이 샀었지만 그는 집 안에서 양말 신는 것을 몹시 싫어해서 사온 직후 한두 번 신더니 슬그머니 신지 않게 되었고, 나 또한 나도 모르게 그런 그를 따라 신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몇 푼 안 하는 수면양말이나마 신느냐 신지 않느냐가 꽤 차이가 났던 것이 생각나서, 나는 손품을 약간 팔아 다섯 켤레짜리 한 묶음을 주문했다.


덕분에 집안 여기저기에는 수면양말에서 빠진 알록달록한 털들이 곳곳에, 무슨 장난기 많은 반려동물의 털 뭉치처럼 나부끼고 있다. 가끔은 뭐 이런 데까지 털이 들어가 있나 싶은 데서까지 나오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 책상을 정리하고 책상 아래를 보면 빠진 털 뭉치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어 물티슈로 일일이 닦아내는 일정이 하나 추가되었다. 아, 그렇지. 그가 수면양말을 신지 않은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천성이 깔끔한 그는 이런 식으로 털 뭉치가 빠져서 돌아다니는 것을 몹시 견디기 힘들어했었다. 그래서 차라리 발 좀 시리고 이런 꼴을 안 보겠다고, 뭐 그렇게 결정했었던 것이다. 그게 지금에야 생각이 났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아니고, 그만큼 깔끔하지도 못하고, 그와는 달리 빠진 털 뭉치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것쯤은 충분히 못 본 체할 수 있는 무딘 인간이므로 나는 이 수면양말을 계속 신기로 한다. 이 겨울이 지날 때까지는.


날은 이제 점점 더 추워져 갈 텐데, 이제 고작 11월부터 이런 엄살을 늘어놓는 약해 빠진 정신 상태로 어떻게 이 겨울을 날지 생각하면 참 앞이 막막하다. 그러나 그래도 할 수 없다. 바꿀 수 없는 거라면 견뎌야 한다고, 뭐 그런 말도 있지 않던가. 이제 내 곁에는 추우면 추우냐고, 더우면 더우냐고 물어봐주고 어떻게든 해주려던 상냥한 사람 같은 건 남아있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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