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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19. 2022

심심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건지 2

-220

서재 겸 작업실 겸, 여튼 내가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을 머무는 방의 창문에는 암막 블라인드가 달려있다. 이 집에 이사 오면서 사서 단 것이니 얼추 단 지가 10년도 넘었다. 사용 기간이 그 정도나 되었으면 이젠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킬만한 시기가 되긴 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작은 지난 10월 말쯤-브런치에 온갖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쓰다 보니 이럴 때 날짜를 찾아보는 것 하나는 매우 편리하다-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창밖을 보고 아 이제 블라인드 내려야겠다고 끈을 잡아당기는 순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블라인드가 떨어져 내린 것이. 그때는 퍽 당황했었다. 폭이 꽤 넓은 블라인드여서 잡아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끼우느라 이마에 식은땀이 바싹 날 만큼 고생을 했었다. 늘어놓은 식탁 의자 위를 어설프게 곡예하듯 몇 번이나 오간 끝에 나는 간신히 떨어진 블라인드를 제 위치에 끼워놓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그냥 일종의 예고편이었던 모양이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이 블라인드는 며칠에 한 번씩 잊을만하면 떨어지고 있다. 물론 그에 따라 나도 요령이 생겼다. 나는 처음 이 일이 생길 때만큼 블라인드를 다시 끼우는 데 애를 먹지 않는다. 처음엔 세 개나 갖다 놓던 식탁 의자도 이젠 적당한 위치에 한 개만 갖다 놓고도 요령껏 블라인드를 끼울 수 있게 되었다. 당장 오늘 아침에만도, 가뜩이나 늦잠까지 잔 와중에 떨어져 내린 블라인드를 다시 끼우느라 한참이나 시간을 잡아먹었다.


물론 이 블라인드를 단 것은 10년도 넘었고 그 사이에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느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그 10년의 시간 동안 두세 번 정도였다. 이렇게 며칠에 한 번씩, 제 존재감을 과시라도 하겠다는 듯 떨어지는 일은 내 기억에는 없었다. 내가 의아한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갑자기 왜 이러는가'. 블라인드를 다시 끼운 내 방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블라인드의 구조상 다른 방법은 불가능하다. 혹은 끼우는 부분을 끼울 때 좀 더 힘을 줘서 꽉 끼웠어야 하나. 그는 그렇게 했었던가. 그래서 한 번 떨어진 블라인드를 다시 끼우면 몇 년 간은 그런 일이 없었던 건가.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꼭 그런 문제이기만 한 건지, 아침저녁으로 블라인드를 열고 닫을 때마다 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이 녀석도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이렇게 떼를 쓰는 건가, 하고. 내가 그렇듯이. 그런 거라면 이건 뭐라고 탓할 수도 없는 문제겠구나 하고 피식 웃어버린다. 아직 나조차 채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그의 부재를 블라인드에게 설명할 방법 같은 걸 나는 알고 있지 못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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