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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20. 2022

고양이는 물론 귀엽습니다만

-221

얼마 전 10년도 넘게 쓰던 텔레비전이 갑자기 고장 나 결국은 중고로나마 바꾸게 되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일을 내가 그렇게나 쉽게 받아들인 건,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텔레비전을 혹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의 텔레비전은 내가 외출해서 집에 없을 때를 제외하면 24시간 켜져 있다. 내가 그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것에 얼마나 집중하는가와는 관계없이. 그냥 텅 비어버린 집 안이 너무 적적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하고 있는 일에 텔레비전의 소음이 방해가 될 때도 있는데, 그럴 때조차 뮤트를 할 뿐 텔레비전을 끄지는 않는다. 이런 걸 보면 요 몇 개월 간 버릇이 좀 잘못 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24시간을 거의 상시로 텔레비전을 켜놓다 보니 정주행으로 틀어놓을 방송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가 갑작스레 떠나버린 후 어딘가 통각 반응이 꼬여버린 내 신경은 통상적으로 생각하기에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무덤덤하고 저게 뭐가 문제냐 싶은 것에는 이상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전부 피해서, 그러면서도 내가 두 번 세 번 리모컨을 만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적당히 길이도 긴 프로그램 vod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에 매우 잘 부합하는 방송이 '동물이 나오는 방송'이다. 동물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어지간해서는 실패하지 않는다. 동물과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보고 있기만 해도 지쳐버린 마음에 많은 위안을 가져다준다. 아마 그래서, 그를 갑작스레 잃어버린 직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강아지든 고양이든 한 마리 키우라고 권했을 것이다. 이 적적한 집안에 온기를 나눌 살아있는 생명이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 역시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매번 '나는 저 짓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년쯤 전 이사 간 옆집에서 개를 두 마리 키웠었다. 나는 그 집 주인이 아침 일곱 시 반쯤 집에서 나가 저녁 여섯 시쯤에 귀가한다는 사실을 이야기 한 마디 나누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그 개들이 주인이 집을 비우기만 하면 구슬픈 목청으로 지치지도 않고 짖어대며 문을 긁어댔기 때문이다. 아마 소위 말하는 분리불안 비슷한 증상이었던 모양이다. 가끔은 견딜 수 없이 짜증이 나고 화가 났지만 개가 짖는 게 개지, 하고 참고 넘어갔었다. 그러나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이웃집에서도 그랬을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내 심신의 안정을 위해 반려동물 한 마리쯤 데려다 키우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요즘 많이들 하는 말대로 '사지 않고 입양'하겠다면 돈 한 푼 들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내 외로움을 달래자고 데려온 생명에게 인간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녀석에게 너를 먹일 사룟값과 너를 동물병원에 데려갈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고 그 시간 동안 나는 너와 놀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인간은 매우 좁은 구역 안에 다닥다닥 붙어서 사는 동물이며, 그러니 네가 큰 소리로 짖거나 운다면 나는 이곳에 계속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저희들 딴에는 뭔가 이유가 있어서 하는 여러 가지 행동들, 물거나, 할퀴거나, 뭔가를 긁어대는 행동들을 나는 과연 어디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것에 생각이 미치면 고개를 내젓게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지만 그 사랑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므로.


사람 하나도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사랑해주지 못한 나에게, 내가 온전히 지켜주고 돌봐줘야만 하는 생명을 곁에 들이는 것은 여전히 너무 벅찬 일로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모니터 너머 혹은 텔레비전 너머로 보이는 남의 집 강아지 고양이들의 '랜선 집사'로 만족하기로 한다. 그게 내게는 딱 적당한 수준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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