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당신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Nov 27. 2022

겨울이 왔다

-228

언제나처럼 월드컵 전날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틀어놓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던 어제 오후였다. 가끔 있는 일로 아무 일도 없는데도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고 우울해져서 그걸 끌어올리느라 일부러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고 유튜브를 뒤져 비트가 강한 노래 몇 곡을 틀어놓고 흥얼거리는 등의 애를 쓰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그때 핸드폰으로 알림 문자 하나가 들어왔다. 자그마치 한파특보였다. 야외 활동 시 체온 유지에 신경 쓰고 농작물의 냉해와 수도관 동파 등에 주의하라는.


아. 겨울이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괜히 고개를 들어 달력을 봤다.


 올해 계절은 달력보다 딱 한 발씩이 빠른 것 같다. 여름이 갔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기 시작했던 것이 8월이 채 끝나지 않은 8월 말 무렵이었는데, 지금도 그렇다. 고작 끄트머리 며칠이 남아있을 뿐이라지만 그래도 아직 11월인데. 초겨울보다는 늦은 가을 쪽이 어울리는 시기인데. 그러나 올해 계절은 조금은 성미가 급해서, 어차피 다음 주 중반부터는 12월이고 그때부터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부인할 수 없는 겨울이니 그냥 지금부터 오프닝 세레모니를 시작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리고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더욱 명백해졌다. 가을은 끝났고, 겨울이 왔다. 나는 오늘 아침 올해 들어 처음으로 핸드폰에 표시된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환기 좀 하려고 잠깐 창문을 열여 보니 확실히 밀려드는 바깥의 공기가 어제의 그것과는 달랐다. 여러 모로 이젠 겨울이었다.


나는 어떻게,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반 바퀴 도는 시간 동안을 그럭저럭 살아내 왔구나. 저쪽, 무성하게 늘어선 건물들 위로 빼꼼히 돋아 오르는 해를 유리창 너머로 쳐다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듯이, 나는 이제부터 내가 나를 돌보고 보살피며 이 길고 혹독한 계절을 나야 한다. 에어컨도 보일러도 껐다 켰다 자꾸 하는 것보다는 적정한 온도로 계속 틀어놓는 것이 오히려 돈이 적게 나오는 방법이라며 그는 겨울이 오면 내내 보일러를 틀어놓았었는데, 가뜩이나 난방비도 전년 대비 30% 가까이나 올랐다는데 이젠 나 혼자뿐인 이 집에서 그래도 되는 건지를 모르겠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되면 눈도 내릴 테고, 가끔 그를 만나러 가는 봉안당은 버스를 내려 한참 동안 비탈진 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그때 고생 좀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년 4월 8일이 오기 전까지는, 아니 그 이후에도 꽤나 한동안 내 인생은 혼자 처음 맞는 무언가로 가득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중 하나인, 혼자 맞는 겨울의 초입부에 서 있다.


살자. 살아내자. 너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도 모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