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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28. 2022

검색기록의 보존기간

-229

가끔 메일을 정리하러 그의 포털 사이트 아이디로 로그인을 할 때가 있다. 그와 나는 같은 비밀번호를 썼다. 가끔 사이트가 요구하는 보안 수준 때문에 다른 비밀번호를 만들어 넣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 그랬다. 그 덕분에 그가 떠나고 반년 이상이나 지난 요즘도, 나는 가끔 그의 아이디로 포털 사이트에 로그인을 해 메일함에 들어있는 몇몇 광고메일을 지우거나 읽음 표시로 돌려놓곤 한다.


그러다가, 그의 아이디로 로그인을 한 것을 깜박 잊고 사이트 메인에 올라온 몇 가지 기사를 클릭해 봤다. 주로 요즘 보고 있는 월드컵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메인화면의 검색창에 커서를 올린 순간, 나는 잠깐 그 자리에 굳어졌다. 검색엔진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떠나기 전 어떤 것들을 검색했는지를.


마지막 검색 일자는 4월 6일이었다. 떠나기 전날인 4월 7일에, 그는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었다. 그래서 뭔가를 검색해 볼 기력조차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검색해 본 것은 한 맛집 프로그램에 나온 장어집이었다. 그는 텔레비전의 맛집 프로그램을 보고 나오는 집들을 체크해 두었다가 방송물이 적당히 빠진 몇 달 후에 꼭 나를 데리고 가곤 했었다. 이것도 그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것일까. 이렇게까지 준비를 했으면 같이 갔어야지. 내가 혼자 장어 같은 걸 먹으러 가겠냐고, 뭐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아래로는 '설향'이라는 낯선 검색어가 있었다. 이게 뭐지. 답은 그 위에 바로 있었다. '설향 딸기'. 그는 늘 내게 과일을 먹이고 싶어 했고 내가 좋아하는 딸기가 되면 더 그랬다. 겨울이 오면 그의 관심사는 '딸기 좀 싸게 안 파나' 하는 거였고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딸기 하나를 사러 집 근처 마트까지 가는 일도 가끔 있었다. 자신의 생명이 다 해가는 그 순간까지도 이 바보 같은 사람은 내게 딸기를 사다 먹일 궁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쯤에서 왈칵 울음이 터졌다. 요즘은 그래도 눈물이 많이 줄었는데. 4월이나 5월 그때처럼 누군가가 어깨만 툭 치고 지나가도 눈물이 나는 시기는 가까스로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한참을 어린애처럼 소리 내 울었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 기록이 언제까지 보존되는지 모르겠다. 1년은 갈까. 어떻게 하면 이 기록을 좀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걸 고민하다가 나는 울컥 화가 났다. 진짜 좀 따지고 싶다. 이런 디지털 바이트 몇 쪼가리 남겨두고 훌쩍 떠나가 버리면 다냐고. 남은 나는 도대체 어떡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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