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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26. 2022

아무도 모른다

-227

몇 년 전 한 야구감독이 출연한 토크쇼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선수를 혹사한다는 비난과 성적 하나는 확실히 내는 사람이라는 옹호를 동시에 받는 사람이었다. 특정 선수를 지나치게 혹사한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MC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 감독은 그렇게 대답했다.


한 집안의 사정은 그 집 부부가 아니면 아무도 모른다.


또 안타까운 사고가 생긴 모양이다. 서울의 한 원룸에서 생활고로 60대의 어머니와 30대인 딸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지는 월드컵 뉴스에 섞여 지나갔다. 건보료가 1년 이상 밀려 있었고 전기가 끊기기 일보 직전이었고 뮨을 열고 들어간 집안에는 온갖 독촉 고지서만이 가득했다는 그런 이야기들.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멍하니 텔레비전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예전의 나라면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어머니야 그렇다 쳐도 딸은 30대밖에 안 됐다는데 왜 일을 하지 않았을까? 어머니도 60대면 요즘 세상엔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닌데 공공근로 같은 걸 알아보면 되지 않았을까? 동사무소에 가면 긴급복지지원 같은 제도도 있는데 왜 이용하지 않았을까? 어머니 되시는 분이 중학교 교감씩이나 지내고 퇴직한 분이었다는데 연금 같은 건 안 나왔을까?


그리고 나는 오늘 아침, 몇 년 전 들은 그 노감독의 말을 내가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떠났다는 말을 듣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왜 치료하지 않았느냐'였다. 처음 몇 번은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의사의 말로, 수술을 하게 되면 사망률이 30%라고. 그러니까 수술을 하러 들어가면 세 명 중 한 명은 죽어서 나온다는 말이라고. 이건 사실은 대단히 높은 사망률이기에 저희 쪽에서도 무조건적인 수술을 권유드릴 수가 없으니 잘 상의하셔서 결정하시기를 바란다는 말을 들었다고, 처음에는 애써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 말을 듣고, 당장 나부터도 그에게 무조건 수술하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도. 그러나 그 설명의 과정은 너무나 지난했고, 때로는 가혹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그렇게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그냥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는 '왜 치료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정말로 그 이유가 궁금해서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이 조금 더 나를 슬프게 했던 것도 같다.


1 더하기 1이 2라는 것은 세상 누구나가 안다. 그러나 1 더하기 1이 0이나 3이 되는 일도 세상에는 가끔 일어난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온갖 구구절절하고 구질구질한 그렇고 그런 사정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뒷사정을 해명하고 변명하는 데는 생각보다 질긴 신경줄과 두꺼운 얼굴 가죽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그 모든 설명을 생략한 채, 그러게요 하는 짤막한 대답으로 얼버무리고 웃음을 지을 뿐이다. 왜 치료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요즘 내가 그렇게 대답하듯이. 아마 돌아가신 두 분에게도 그런 식의, 차마 말할 수 없는 온갖 사연이 다 있었으리라고, 나는 이제야 남의 설명 없이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삼가 두 분의 명복과 가신 곳에서는 그 어떤 슬픔도 아픔도 없으시기를 빈다.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이 더 이상 두 분을 괴롭히지 못하기를 기원한다는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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